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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스마트 그리드,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한 첫 조건

irene777 2016. 1. 14. 03:03



스마트 그리드,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한 첫 조건


김홍열  성공회대 겸임교수 (정보사회학)


- 진실의길  2016년 1월 10일 -




2016년 1월 현재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는 스마트 그리드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는 전기의 생산, 운반, 소비과정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하여 공급자와 소비자가 서로 상호작용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인 지능형 전력망 시스템이다.“


협소하게 정의된 이 시스템의 일차 목적은 당연히 에너지 절감이다. 물론 에너지 절감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의제다. 어린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발음하는 ‘지구 온난화’가 언급될 때마다 에너지의 과다 사용이 제일 먼저 부각된다. 에너지가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기에 에너지의 과다 사용 억제는 당연히 전 지구적 이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이해되는 화석 연료의 과다한 사용을 규제할 강제적 규범이 없는 상태에서 스마트 그리드가 등장했다.





개별 소비자들이 자신에게 공급된 전기를 저장하여 필요한 다른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스마트 그리드는 지극히 현실적인 대안이고 이 스마트 그리드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문제의식은 단지 에너지 절감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에너지에 대한 우리의 고정 관념을 변화시켜 준다. 에너지가 없으면 우리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 지금의 현대 문명은 화석 에너지가 만들어낸 커다란 조형물이다. 에너지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없으면 우리는 이 불편한 현실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다.


역사의 전 과정을 두 단계로 구분한다면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삶 대부분을 규정하는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은 산업혁명 이후에 만들어졌다. 좀 더 수사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중세의 후손이 아니라 근대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고 근대를 통하여 중세와 고대를 이해하고 있다. 근대를 만들어 낸 산업혁명은 에너지의 인공적 생산과 유통이 가능해진 순간에 시작됐다. 인류가 기계의 힘을 빌어 대량생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계를 끊임없이 작동시킬 수 있는 에너지의 발명이 전제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장이 만들어지고 시장이 형성되고 도시가 확대되면서 자본주의 근대 국가의 기본을 형성한 과학적, 기술적 배경의 주인공은 단연 화석 에너지다. 이후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의 캐치프레이즈라고 할 수 있는 물질적 풍요로움의 세례를 받아 늘 모든 것이 영원할 줄 알았다.


이런 믿음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는 눈이 녹아 갈 곳이 없는 북극곰의 영상 때문만은 아니다. 화석에너지를 포함해 현재 지구 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에너지는 속성상 소모성의 일회적이고 자연파괴적이며 재생 불가능하다. 더 하나 치명적인 것은 에너지의 생산과 유통 전 과정이 거대 자본에 포섭되었다는 것이다. 텃밭 하나 가꾸어 상추를 자가 공급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 외 모든 것은 자본이 만든 에너지 생산, 유통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다.


자본은 끊임없이 에너지의 대량 소비를 강요하고 있고 우리는 삶 속에서 과도한 소비를 일상화하고 있다. 결국 에너지의 생산과 유통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대량생산 시스템에 의한 환경 파괴와 에너지에 종속되어 있는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기가 힘들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역사적인 모든 시도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된 이유 역시 근본적으로 에너지의 전 지구적 유통구조에서 그 누구도 이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현재의 에너지 분배 구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벗어날 경우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줄기 가능성은 생겼다. 정보통신혁명에서 그 가능성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기술을 이용하여 전력의 현재 공급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남는 전력을 부족한 곳으로 보내줄 수 있다면 일차적으로 에너지의 과다소비는 막을 수 있게 된다. 작은 차원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좀 더 확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리가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데이터를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것처럼 인터넷 망을 통해 전력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사람끼리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전보다는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아직도 그리고 한동안은, 에너지의 공급을 거대 자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스마트 그리드가 본격화되면 봄에 씨앗 하나 뿌리는 정도의 희망은 생긴다.


스마트 그리드가 던져주는 문제의식과 그 문제의식이 구현해낼 기술적 성과가 예측되기 때문이다. 우선 화석 같이 굳어진 에너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에너지 역시 데이터처럼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발상이 일상화된다. 에너지는 불가역적이며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에너지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져 왔고 결국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을 묵인하는 결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이제 각성된 의식이 서서히 신기술 개발로 연결되고 있다. 우선 에너지 저장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 데이터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역시 저장해 놨다가 필요한 곳에 전달해 줄 수 있다. 개별 건물들이 이런 저장소 역할을 하게 되고 정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으면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은 급속도로 증가하게 된다. 다음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기술은 태양, 수소, 바람과 같은 녹색 에너지의 개발이다. 이미 지역 차원에서는 실제 활용되는 곳이 있다. 현재 시점에서 녹색 에너지의 가장 큰 장점은 환경친화적 속성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지속 가능한 경제를 가능케하는 근본적인 솔루션 제공에 있다.


지속 가능한 경제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 공동체에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가 공동체 안에서 생산 유통되어야 하고 그 결과와 책임 역시 공동체 안으로 귀속되어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상품과 서비스의 자체 공급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외부의 영향력이 최소화되어야 한다. 외부에 위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면 그 공동체는 더 이상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지속 가능한 경제가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첫 번째 물질적 조건이 에너지의 독립적 생산, 유통에 있다.


에너지의 현 수준에 맞추어 생산과 소비를 하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집단적 의사를 반영한다. 기존의 하이어라키 시스템, 대량생산 시스템의 폐해를 없애고 수평적, 협업적 사회 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에너지도 정보 데이터와 마찬가지로 소유의 개념에서 공유의 개념으로 바뀐다. 이데올로기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기 힘든 세상이다. 유일한 솔류션은 아니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 스마트 그리드가 던져준 문제의식과 관련 기술의 발전이 그나마 가능한 하나의 희망이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hy_kim&uid=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