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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지봉 - 한·일 간의 위안부 피해자 합의와 헌법

irene777 2016. 1. 23. 17:51



[정동칼럼]


한·일 간의 위안부 피해자 합의와 헌법


- 경향신문  2016년 1월 17일 -





▲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14일 일본 국회의원의 위안부 망언이 나왔다. 군 위안부에 대해 “직업으로서의 매춘부였다. 이를 희생자처럼 말하는 선전공작에 너무 현혹당했다”고 말했다. 한·일 외교장관이 ‘12·28 합의’를 발표한 지 17일 후에 벌어진 일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고위 정치인들의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12·28 합의에서 언급한 일본 측의 사과가 얼마나 진정성 없는 것인가를 말해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러한 망언은 한·일 외교장관 간의 허술한 합의가 기자회견 형식을 빌려 서둘러 발표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한·일 간의 12·28 합의는 법적인 효력을 가지기 힘든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국가 간의 합의가 법적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것이 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으로 문서화돼야 하는데 문서조차 없기 때문이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그 유가족 등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사항’에 관한 국가 간의 합의는 국회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함에도 이러한 동의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고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합의와 관련된 헌법규정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의해 비로소 국제법인 조약이 국내법규로서 국내법적 효력을 가지게 된다. 헌법학자들은 ‘조약’을 ‘국가 간의 문서에 의한 합의’로 정의한다. 그 명칭이 조약이든, 협약이든, 협정이든, 규약이든, 선언이든, 의정서든 국가 간의 문서에 의한 합의이기만 하면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다 조약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조약의 ‘체결 및 비준’ 권한은 헌법 제73조에 의해 대통령에게 주어진다. 이때 조약의 ‘체결’이란 조약 협상에 실무적 역할을 담당할 전권대사의 지명 및 파견과 조약내용에 대한 대통령의 기본방침 지시를 통해 보통 전권대사가 수행한다. ‘비준’이란 전권대사가 체결하고 서명한 조약안을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확인해 ‘조약안’을 ‘조약’으로 완성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이번 한·일 간의 합의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문서 없는 합의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이 점에 대해 외교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답변을 받은 결과, 외교부는 이번 한·일 간 합의가 공식 서면 합의가 아님을 확인했다고 한다. 한·일 양국 장관의 발표 내용과 관련해 교환된 각서나 서한도 없었음을 외교부가 확인해준 것이다. 협상을 위한 전권대사의 공식적인 지명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또한 조약안에 대한 서명이나 대통령의 비준절차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약으로 성립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절차적 요건들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국회에도 조약의 체결과 관련해 중요한 권한이 헌법에 의해 부여돼 있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조약에 대해서는 국회도 동의권 행사를 통해 조약 형성에 가담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헌법 제60조 제1항은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등 체결·비준에 앞서 국회에 의한 사전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만 하는 일곱 가지 조약들을 열거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요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국회를 관여시켜서 그러한 조약을 국민의 의사인 법률과 같이 보려는 국민주권적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국회 동의권은 대통령의 전단을 방지하고 조약의 성립에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통한 민주적 통제를 가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대통령의 조약 체결·비준을 정당화시키고 조약의 국내법적 효력을 발생시켜주는 요건이 된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한·일 간의 합의는 이 일곱 가지 조약들 중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에 해당한다. 국민의 기본권은 국회가 만든 법률로써만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 제한에 관한 사항은 “입법사항”이 될 수밖에 없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기본권을 심대하게 제한할 수 있는 이번 합의는 따라서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얻어 체결해야 하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의 동의도 없이 양국 외교장관들에 의해 서둘러 발표된 합의라면 이번의 한·일 간 합의는 설령 문서화되었다고 하더라도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이 아니게 되어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된다.


법적 효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인 이번 한·일 간 합의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와 국민들의 뜻을 널리 수렴하고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조약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헌법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헌법적 요청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172048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