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비가역’ 한국외교
- 경향신문 2016년 1월 21일 -
▲ 김준형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
작년 말 위안부 합의 이후 ‘비가역’이라는 말이 유명해졌다. 비가역의 사전적 정의는 이전 상태에서 현재 상태가 되었을 때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일상에선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지만 한국외교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처음 비가역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북한의 핵폐기를 강조하면서였는데, 부시와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책을 대변했던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해체를 구성하는 세 번째 단어다. 임기 초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대화할 수 있다고 협상의지를 밝혔던 오바마 정부도 지난 7년간의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 아래 무대책으로 일관하다 결국 CVID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문제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돌이킬 수 없게 하였다. 북한이 문제의 근원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실질적인 문제 해결 과정과 방법론이 부재한 가운데 압박과 배제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북강경파의 희망과는 달리 붕괴하지도 않았다. 4차 핵실험 이후 또다시 강경론으로 북한을 압박하겠다고 하지만 제재수위를 조금 더 높인다고 북한 핵개발의 비가역성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두 번째 비가역이 등장한 것은 위안부 합의다. 일본으로부터 법적 책임과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했음에도 이번 합의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며 비가역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후 한국은 위안부와 관련한 어떤 발언도 못한다고 못 박았다. 인류 역사상 가해국 정부가 사과하면서 향후 문제제기 및 비판까지 못하게 재갈을 물린 예는 전무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박정희 정부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이라고 동의해주는 바람에 그 후 우리가 겪은 어려움을 알고서도 이를 또 수용한 박근혜 정부는 역사의식의 부재는 말할 것도 없고 국익에 대한 무개념과 무능을 드러냈다. 아베는 보란 듯이 지난 18일 도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곧바로 부인했으며, 일본의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단언했다. 비가역은 결국 한국에만 족쇄다.
세 번째 비가역성을 요구받는 곳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동북아의 신냉전 경향인데,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변수가 될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북한의 비가역적 핵개발이 빌미가 되고, 한·일 위안부 합의로 한·미·일 군사협력네트워크 구축의 장애물이 제거되었다. 이는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해결보다는 활용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대중 견제를 포함한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아시아 회귀전략이 날개를 달게 되었다.
북한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조치로 한반도 배치가 거론되고 있는 사드, 스텔스기, 항공모함, 전략핵폭격기 등 전략무기들은 따지고 보면 북한 비핵화나 한반도의 안보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무기들이 아니다. 결국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초래하며, 미·중, 중·일 간의 패권경쟁에 한국이 비용까지 대면서 연루될 위험성을 높인다. 게다가 미국의 전략적 자산의 일시적 배치로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위안부 합의를 배후에서 이끈 미국은 그야말로 3각 동맹에 준하는 한·미·일 군사협력을 비가역적으로, 그것도 빠른 속도로 제도화시키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 큰 문제는 지난 수년간 급속하게 강화된 미·일동맹이 중심축이 되고,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의 하부구조로 작동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지난 수년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꾸준히 강조되어온 한·미동맹의 상호운용성 확보는 이제 일본과의 3각 운용성으로 진전시킬 것이다. 더욱이 일본의 집단자위권 확보와 더불어 우리의 전시작전권 부재의 현실에서 한반도 유사시 우리는 미국을 대신한 일본의 지휘통제를 받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과연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박근혜 정부 외교는 화려한 외양과 자화자찬과는 반대로 항상 일이 터진 후 막는 데만 급급하면서 우리의 입지를 약화시켜왔다.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드 도입과 연계해 중국의 대북제재를 압박하는 행보는 확실한 전략이나 다양한 카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영 대결구조의 비가역성을 막기는커녕 가속화할 뿐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212034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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