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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한종 - ‘더불어 살기’를 가로막는 노동법개정안

irene777 2016. 2. 2. 18:06



[정동칼럼]


‘더불어 살기’를 가로막는 노동법개정안


- 경향신문  2016년 1월 26일 -





▲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은 국회와 야당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직접 서명에 나섰으며, 고용노동부는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요건의 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지침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반해 한국노총은 지난해 9월 있었던 노사정 합의의 파기를 선언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5대 노동법 개정안’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폐기되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노동법 개정안의 기본적 관점은 성과주의이다. 이미 발표한 저성과자 일반해고 가능 지침이야 직접적으로 이를 겨냥한 것이니까 말할 것도 없고, 노동법 개정안 중 하나인 임금피크제도 노동효율성이 떨어지는 나이부터 임금을 줄이겠다는 뜻이니까 성과를 토대로 한다. 파견근로직 대상의 확대나 비정규직 근무 기간 연장, 주 단위 근로시간의 60시간 제한도 성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이 개혁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사회 내부이건 국가들 간이건 경쟁이 날로 심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성과를 중시하는 현상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높은 성과를 내는 사람을 우대하고 낮은 성과자를 제재하면 사회가 훨씬 효율적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기업은 물론 공무원 사회까지 성과급 차등 지급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성과연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여기에 근거한다. 그런데 성과중심의 제도 개편은 과연 사회를 발전시킬까. 성과주의는 바람직한 사회를 가져올까.


성과를 판단하는 데는 필연적으로 평가가 뒤따른다. 평가는 구성원들의 가치를 자리매김한다. 성적에 따라 줄을 세우는 것이 한국교육의 병폐라는 비판은, 학교를 벗어나는 순간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된다. 더구나 성과를 측정하기 위한 평가기준의 상당 부분은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구성원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과주의가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도입되는 계량화된 평가가 현 정부가 내세우는 창의성보다는 기준에 맞춘 기계적 성과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은, 나같은 사람이 속해 있는 대학의 교수업적 평가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점은 경쟁과 평가를 당연하고 바람직하다고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노동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법의 개정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용주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젊은이와 나이 든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고 재촉한다. 그러나 사회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경쟁을 통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야 자신이 능력이 있는 존재라고 여기고, 이를 위해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의식이다. 그러는 가운데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공동체 의식은 파괴된다.


그렇지만 누구나 일정 성과 이상을 거두면 다 함께 잘살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성과를 강조하는 이상, 성과주의도 성과를 거둬야 한다. 그 성과는 구성원 중 일부를 추려내어 배제시키는 것으로 입증된다. 그렇게 배제되는 구성원의 수가 많아질 때 성과는 커진다. 성과중심의 사회가 나아가는 필연적 귀결이다.


연초부터 언론에서는 노동개혁법이다, 원샷법이다 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여당과 야당 사이뿐 아니라 여당 출신 국회의장과 여당의원, 대통령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갈등이 계속된다. 그만큼 이 법안들이 국민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법안의 쟁점들이 무엇인지, 왜 이런 논란들이 계속되는 것인지 명확히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누리과정 예산 지원을 둘러싼 정부와 시·도교육청 간의 갈등은 당사자들의 생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이에 해당하는 자녀를 갖지 않은 사람들은 누리과정이 어떤 연령 단계인지 모르는 경우도 흔하다.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법이나 제도, 행정이지만, 이를 둘러싼 의사결정 과정에 사회구성원이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법 개정안이 어떻게 결말지어지건 간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는 것은 성과를 위한 경쟁,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야 대우받을 수 있다는 마음뿐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라는 마음은 설 자리를 잃어버린 채 말이다. 노동법 개정안이 갖는 근본적 문제점은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현재 한국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의 궁극적 문제이기도 하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262016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