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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철수와 국민의당, 그 팬덤에게 쓰는 편지

irene777 2016. 2. 3. 01:11



안철수와 국민의당, 그 팬덤에게 쓰는 편지

10년 패배야당의 2유2무 정치 따라가는 신당? 그 길이 바로 죽는 길


진실의길  임두만 칼럼


- 2016년 1월 21일 -




오늘이 대한입니다. 大寒… 한자만큼이나 날씨가 춥습니다. 그런데 더 추운 것은 민생입니다. 하지만 민생이 좋아질 것 같지 않은 점이 또 추위를 더 느끼게 합니다. 오늘도 박근혜 대통령은 개혁이라는 말을 붙여 노동자들의 해고가 자유로운 법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국회를 압박하고, 언론들은 이를 처리하지 않는 국회가 책임을 해태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합니다.




▲ 이미지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그러나 아무리 봐도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려는 노동법 개정은 국민 모두를 위한 법이 아닙니다. 개발독재 시대에 파이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정부는 드라이브를 걸고 기업주는 노동자의 박봉과 척박한 근무환경 개선은 신경 쓰지 않으면서 돈을 벌었던 당시의 노동환경으로 돌아가자는 말로 들립니다.


당시의 기업주들은 파이가 아무리 커져도 그 파이를 만드는데 노동력을 제공한 사람들과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파이의 부스러기쯤 먹으면서 부스러기를 나눠 가지려는 경쟁 일색이었습니다. 때문에 잔업이 일상화였으며, 심야근무도 더 하려는 경쟁이었습니다. 그래야 부스러기를 조금 더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업주는 무소불위, 기업주에 충성하는 주변 측근들은 지주의 행패를 대신하는 마름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면서 반항하고 대드는 직원들을 찍어서 죽이는데 앞장섰습니다.


이것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노동착취가 가능한 나라라서 외국자본은 한국에 공장을 세우고 그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여 돈을 벌다가 노동자의 권익이 커진다 싶으니까 야반도주도 불사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이렇게 떠난 자본은 중국을 거쳐 지금은 노동착취가 가능한 베트남 등 동남아 저개발국가 등을 찾아다닙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란 결국 노동착취가 쉽고 세금을 덜 내는 환경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노동현장을 만들어준다고 그런 공장에 들어 갈 젊은이가 있을까요? 지금도 생산직 근로자가 필요한 공장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야만 상품을 생상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제 우리의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고 기업주 맘대로 해고하기 쉬운 법을 제정한다면 어찌될까요? 어차피 젊은이들은 저임금 생산직은 외면한지 오래입니다. 피자헛이나 맥도날드 스타벅스에서 시간제 알바로 용돈을 벌면서라도 직장은 번듯하고 고임금인 곳의 정규직을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말한 젊은이들의 일자리는 그런 곳입니까? 기업주에게 기존 직원을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해주고 그들이 받던 임금 쪼개서 임시직 계약직 파견직으로 여러 명을 채용하라는 것 아닙니까? 회사만 재벌이고 출근 장소만 번듯하면 임시직 계약직 파견직도 좋은 일자리인가요?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이 ‘헬조선’을 외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은 그래서 정규직의 채용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헬조선을 해결해야 할 주체가 누구입니까? 대통령을 견제하고 기업주가 노동자의 권익과 권리를 인정하면서 기업하는 것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고용 늘리기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일을 누가 해야 합니까?


정치이며 야당이고 국회입니다. 이런 국회 이런 야당을 만들려고 신당을 하는 것이 아닌가요? 기존 정치권이 기존 야당이 이런 일을 못하니까… 자기들 국회의원 자리, 자기 권속들, 가까운 페밀리들만 따뜻하면 되니까… 대강 대충 투쟁하는 척 하다가 슬그머니 대통령과 여당에게 ‘합의’라는 이름으로 물러서 버린 있으나 마나 한 야당이니까… 이 야당의 교체를 주장하며 탈당하여 신당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요?




▲ 이미지 제공 : 국민의당



그런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탈당으로 물리적 경쟁에 나선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초반 치고 나가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역전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쩌면 이 구도가 굳어져 3당이되 총선에서 의미있는 의석의 획득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경계등이 켜진 상대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래는 한 젊은이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현상을 분석하여 올린 글입니다.




[(안철수의 탈당과 신당 드라이브로 순식간에 안철수가 치고 나갈 때) 개인적으로는 (나는)문재인이 불리한 구도였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야당의 텃밭인 호남이 크게 요동쳤고, 승패를 가르는 핵심세력인 '관망층'은 문재인에게 정을 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동치는 호남민심은 안철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관망층’ 역시 (잊었던) 안철수에 대한 관심을 되살려 그를 지지율 1~2위급 대선주자로 다시 올려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이 반격하기는 쉽지 않았다. 흐름을 되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역대 ‘야권 교체’의 역사를 봐도 한 번 이렇게 분당의 흐름이 형성되면 대체로 그런 흐름을 만든 쪽이 결국은 다수가 되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런 흐름들은 사라져 가고 있다. 호남의 안철수를 향한 관심은 식어가는 듯하다. 일단 호남의원들의 더민주당 탈당행렬이 멈췄다. 국회의원의 탈당이라는 것은 개인적 정치적 욕심 때문일 수도 있지만 ‘지지층/지역의 요구를 표현하는 측면’도 분명히 존재하기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또한 여론조사(갤럽. 리얼미터)에서도 뒤집혔다. 관망층의 경우는 각종 여론조사를 봤을 때 호남이 빠지는 것만큼의 속도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전 같지 않은 건 분명하다. ‘호남’과 ‘관망층’이 안철수에 대한 관심을 거둔다면 안철수가 딛고 설 토양은 없다. 일시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아직 단언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안철수가 이런 흐름을 반전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핵심적인 이유가 있다. 그가 기존 야권의 ‘실패 모델’을 반복하고 있으며 거기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모델이냐면 이런 것이다. 증오와 비난만 있고, 비전과 컨텐츠는 없는 정치. 즉 <2有 2無 정치>다. 안철수 그룹은 더불어민주당, 정확하게는 그 당의 주류인 ‘친노그룹’을 증오한다. 또 비난한다. 천정배 그룹보다 강도가 더 세다. 대통령과 새누리당 역시 비난한다. 양당정치를 싸잡아 비판한다. 즉 ‘국민의당’이라는 당은 기본적으로 증오와 비난의 에너지에 기초한 정치그룹이다.


왜 비전이 없다고 하나? ‘성찰적 진보+합리적 보수’를 하겠다 하지 않나?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보수 양당체제를 극복하겠다 하지 않나? 하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공허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부정’에 기초한 명제이며, 또 어떻게 그 가치를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이 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24년 전, 역시 총선 3개월을 앞두고 여야 이탈자들을 모아 급조 창당한 정주영의 통일국민당만 해도 초중등학생 무상급식, 반값 아파트, 국가보안법 폐지, 경부고속도로 복층화, 대학 입학정원 폐지 등의 구체적인 ‘컨텐츠’를 내걸었다. 그런데 안철수는? 과문한 탓인지 ‘총선 연기’ 외에는 그다지 구체적인 제안이 기억나지 않는다. 소모적인 이승만 국부 논쟁과 영입 인사 논란만 떠오를 뿐이다.


이것은 기존의 야권이 ‘무난한’ 패배를 반복해 왔던 익숙한 패턴이었다. 이명박근혜와 새누리당을 향한 증오와 비난, 그리고 당내 주류를 흔드는 비주류를 향한 증오와 비난. 그러면서 비전과 컨텐츠는 없었다. ‘이명박근혜를 극복한’ 새로운 사회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당내 화합을 일궈내고 패권을 일소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그러니 그동안 관망층은 아무리 이명박근혜가 싫어도 선뜻 무능하고 시끄러운 야당에 표를 주기 꺼려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패배를 밥 먹듯 하는 야당을 호남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야당을 바꾸겠다며, '야권 교체'를 하겠다며 등장한 안철수 그룹이 기존의 야당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한 듯한 <2유 2무 정치(증오/비난 유, 비전/컨텐츠 무)>를 하고 있다. 그 길을 벗어날 의지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이 길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안철수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우세를 점한 문재인 그룹 역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안철수와의 물리적 경쟁이 문재인 그룹의 체질 강화에 도움이 된 게 사실이라면, 이제 관망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은 기득권 세력과 미래 세력의 대결’ 같은 구호는 우려스럽다. <2유 2무 정치>의 연장선으로 보여서다. 야권이 관망층을 끌어와 승리하기 위해선 편을 가르는 증오와 비난의 언어는 줄이고(안희정처럼), 비전과 컨텐츠를 제시해야 한다고(이재명처럼) 생각하고 있다.]




이 글이 제시한 어젠다는 분명합니다. 지금의 야당이 패배를 밥먹듯했던 이유는 ‘심판선거’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판’ 좋습니다. 잘못한 것 심판 해야지요. 그런데 심판한 다음 새롭게 무엇을 하겠다는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니까 ‘희망없는 심판’보다 기존 여당의 ‘잘못한 것 압니다. 고쳐서 잘하겠습니다’의 회개 모드에 이은 새로운 희망제시에 또 속는 겁니다.




▲ 이미지 제공 : 국민의당



지금까지 선거에서 이긴 측의 어젠다는 언제나 분명했습니다. 권위주의 통치를 끝내자는 국민적 요구에 노태우는 ‘보통사람들의 시대’라는 어젠다를 제시했습니다. 물태우라고 비난을 받을만큼 권력이 힘없어 보이니까 김영삼은 힘있는 문민통치자였던 대처의 ‘영국병 치유’ 구호를 그대로 가져와서 ‘한국병 치유’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김대중은 IMF 구제금융이란 국난에 ‘준비된 대통령’ ‘통일 대통령’이란 어젠다를 던졌고. 3金의 카리스마가 퇴장한 자리에서 노무현은 ‘국민대통령’을 주장했습니다. 이명박은 경제난국에 4대강을 파서라도 경제를 살린다는 확실한 어젠다를 제공했고 박근혜는 ‘강한 대한민국’이란 이념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패배한 측은 모두 하나 같이 ‘심판’이었습니다. 87년 김영삼 김대중의 독재심판, 92년 김대중의 3당합당 심판, 97년 이회창의 3김심판, 02년 이회창의 김대중 정권심판, 07년 정동영의 이명박 거짓말 심판, 12년 문재인의 박정희 독재 심판… 심판선거의 구호로 대항한 후보는 모두 졌습니다.


심판 좋습니다. 그러나 심판 후의 희망을 국민들은 더 바랍니다. 지금 김종인의 국보위 전력 공격이 먹히지 않는 것, 반면 한상진의 이승만 국부론이 더 비판을 받는 것… 국보위 전력이 있더라도 김종인은 친노의 퇴장을 이끌 수 있을 것 같고, 경제민주화란 확실한 어젠다가 있습니다. 반면 한상진은 심판의 대상이던 호남 기성의원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서 세불리기에 주력하나 실제로 희망에 대한 어젠다는 내놓은 것이 없습니다. 이 두 가지의 확실한 차이가 지금 지지율이 역전되면서 그대로 굳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동안 지켜보다가 하도 답답하여 이 글을 씁니다. 특히 한 젊은이의 페이스북 글을 읽고 그 글의 진정성을 전달하고 싶은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입니다. 기득권 양당체제가 깨지면서 유권자들에게 골라찍는 선택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신당을 주장했던 저의 신조였는데 지금 하는 것으로 보면 친노의 퇴장과 함께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는 더불어당이 더 희망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여 착잡합니다.


그래서 다시 말합니다. 신당은 신당다워야 합니다. 新을 새신, 새로움이라고 부릅니다. 新黨은 새로운 당입니다. 새로움은 희망입니다. 새로움은 미래입니다. 새로움은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따라서 신당은 희망이 장착된 무한한 가능성의 미래를 제시해야합니다. 네거티브가 주력이어서는 안 됩니다. 증오와 비난만 있고 비전과 컨텐츠는 없는<2유 2무 정치>를 신당이 해서는 안 됩니다. 그 <2유 2무 정치>로 망한 정당의 10년사를 우리는 너무도 역력하게 기억합니다. 이 기억이 다시 되돌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c_flower911&uid=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