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칼럼]
박근혜 외교의 다섯 가지 특징
- 경향신문 2016년 1월 27일 -
▲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정부에 쏟아지는 중요한 질문 하나는 북핵 문제 해법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 대답은 이렇다. “지금은 대북 제재에 집중할 시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4차 핵실험 때까지 비핵화 구상을 내놓은 적이 없다. 그는 통일이 북핵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믿고 있다. 북한 붕괴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남들은 몰랐던 쉬운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런데 그걸 북핵 정책이라고 공표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붕괴론에 기대 북핵 위험성을 방치한다는 비판을 감내해야 한다. 그는 그럴 각오를 한 것 같다. 업무보고 자리에서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결국 통일”이라고 당당히 주장했다.
하지만 그 논리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 하나가 붕괴 때 핵무기의 행방이다. 본래 통제력 잃은 핵무기가 더 위험한 법이다. 물론 박 대통령은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두 그가 물러난 뒤의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후임자들은 북한이 붕괴하지 않는 한 박 대통령의 직무유기로 핵능력을 강화한 북한과 더 어려운 여건에서 북핵 문제를 다뤄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책임회피. 박근혜 외교의 첫 번째 특징이다.
수소폭탄 실험으로 세계 최강의 핵 억제력을 보유하게 됐다는 북한이 무서워하는 게 대북 확성기 방송이다. 대북 방송에 대한 보복으로 남쪽에 날려 보낸 것도 남쪽에는 이미 차고 넘치는 박 대통령 비판 글이다. 21세기와 석기시대가 공존하는 것 같은 이런 현상은 북한에 국한되지 않는다. 통일과 확성기를 북핵 해법이라고 하는 것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섞이는 일은 남한에도 흔하다. 박근혜 외교는 목표를 정확하게 조준하지 못하고 적절한 방법을 찾지도 못한다. 그의 해법은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크거나 너무 작다. 과대와 과소. 박근혜 외교의 두 번째 특징이다.
그가 톈안먼 망루에 오르는 것을 결행할 때 세상은 향후 펼쳐질 한·중관계의 변화를 궁금해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모든 게 뒤집어졌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박 대통령은 중국이 대북 제재에 참여해야 한다며 숨 돌릴 틈 없이 몰아붙였다. 불쑥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거론, 중국을 자극했다. 국제 합의인 6자회담을 쓸모없는 것이라며 5자회담을 제안했다가 즉각 거절당하기도 했다. 망루에 오른 건 박근혜이고 핵실험을 한 건 김정은이다. 중국의 잘못이 아닌 일을 두고 펼치는 공세에 시진핑은 어떤 생각을 할까. 망루에 올랐을 때와 내려왔을 때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하며 놀랬을지 모른다.
박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대일관계에서도 반복됐다.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과도하게 부각시키더니 어느 순간 졸속 협상으로 모든 걸 끝냈다. 그 결과, 아베가 큰소리치고, 박근혜는 숨죽이는 처지로 바뀌었다. 대중·대일 외교는 협력에서 갈등으로, 갈등에서 협력으로 방향만 다를 뿐 극단을 오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의 쏠림. 박근혜 외교의 세 번째 특징이다.
한·중 협력 강화는 중장기적 흐름을 타고 지속해야 할 과제, 대북 제재는 당면 현안이다. 협력과 제재는 서로 충돌하는 것도 양자택일할 것도 아니다. 한·일 간 역사인식 문제는 중장기 과제, 관계 정상화는 당면 현안이다. 역사인식 문제로 갈등하면서도 관계는 정상화해야 한다. 외교에서 조화, 병행의 가치는 매우 소중하다. 박 대통령은 그런 유연성과 능숙함이 없다. 오직 경직성. 박근혜 외교의 네 번째 특징이다. 한·중관계 발전이 한·미·일 협력체제 이탈이 아니듯 한·미·일 협력 또한 대중 견제용이 되면 안된다. 한·미, 한·일, 한·중 간 미묘한 균형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동북아에서 균형은 생존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중국과 협력할 때 일본과 대립하고,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과 협력관계로 전환하면서부터는 중국과 대립하고 있다. 한·중을, 한·미·일 대립물로 만들었다. 균형의 실패. 박근혜 외교의 다섯 번째 특징이다.
박근혜 외교의 이런 난맥상은 북한, 일본 없이 외교하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됐다. 미·중과 잘 지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대북 무관심은 대외 종속성을 높였다. 북한 위협 문제는 미·일에, 대북 압박 문제는 중국에 의존하면서 동북아 주도력을 잃어갔다. 일본 무시는 결국 미국의 압박에 따라 관계 정상화로 돌아서야 했다. 대중 외교는 오바마의 압력, 박근혜의 실수가 겹쳐 어디로 갈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모든 외교 실패의 원인 하나를 집어낸다면 역시 대북정책이다. 박 대통령의 일본 무시는 미국이 교정했지만 북한 무시는 바로잡아줄 외부의 힘이 없다. 스스로 고쳐야 한다. 북핵 해법, 박 대통령밖에 없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262019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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