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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문명적 도착 ①

irene777 2016. 2. 12. 17:12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문명적 도착 ①

파리에 출현한 ‘전쟁터’, 프랑스의 ‘테러와의 전쟁’


진실의길  김종익 칼럼


- 2016년 1월 27일 -





지금 국회에는 ‘테러방지법’이 계류되어 있다. <세카이> 2016년 1월호에 실린 이 글은 테러가 ‘테러방지법’으로 방지할 수 없다는, 너무나 명쾌한 해석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테러’라는 게 이른바 강대국과 그 강대국에 휘둘리는 국가들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말이다. ‘테러의 민낯’은 바라보는 일은, 바로 식민지 시대의 식민지 종주국들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테러방지법’이 테러를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테러를 불러들이는 것이라는 사실에 오싹 몸서리가 일어난다.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여러 논의가 있지만, 이 글은 테러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다른 방식의 통찰을 보여준다. 이 번역글은 분량이 길어 2편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 역자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문명적 도착


니시타니 오사무 西谷 修

1950년생. 릿쿄 대학 문학연구과 특임 교수. 전공은 프랑스 사상, 비교 문명학. 

『불사의 wonderland』, 『‘테러’와의 전쟁』, 『이성 탐구』, 『파국의 prism』 등의 저서가 있다.



“우리는 전선에 있다. 축구 전용 경기장, 파리 10, 11구에서 습격, 외출 금지, 국경 폐쇄….” 11월 14일 토요일 아침, 퍼스널 컴퓨터를 열자 파리의 지인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바로 언론 사이트를 보고 상황을 파악했다. 현지 시간은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고, 습격한 범인이 안에서 버티며 최대 희생자를 낸 바타클랑Bataclan 극장 주변은 아직 어수선한 상태였다. 이것이 아오야마靑山(도쿄 도 마나토 구 서북쪽 지명-역주)나 하라쥬쿠原宿(도쿄 도 시부야 동부 지명-역주)였다고 생각하면, 파리의 혼란도 상상이 된다.





파리에 출현한 ‘전쟁터’


파리에서는 올해 1월,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습격 사건(이 사건과 연동된 경관 살해와 유대인 상점 점거 농성)이 있었던 참이다. 왜 파리일까? 라는 의문은 프랑스를 아는 사람에게는 거의 일어날 수 없다. 1990년대 알제리를 휩쓴 폭력의 창궐과, 아랍계 이민 문제, 거기에 프랑스의 중동 지역에 대한 역사적 관여 등으로 보면, 파리는 유럽에서도 가장 튀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1월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는 ‘테러와의 전쟁’에 관여를 강화하고, 시리아와 이라크의 이슬람국가 공습 폭격을 위해 핵무장 항공모함 샤를 드 골을 출동시켰고(그때 올랑드 대통령은 항공모함 위에서 연설을 하여, 전쟁하는 국가의 정상을 연출해 보였는데, 이 연출은 지지부진하던 지지율의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평가된다), 9월부터는 페르시아 만으로 보내 공습 폭격을 강화하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프랑스는 ‘전쟁’을 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다다음 날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 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이 몸소 언명했듯이, “우리는 전쟁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전쟁이라면 상대(적국)이 있다. 다만, ‘테러와의 전쟁’인 경우, ‘적’은 불특정한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간주되고 있다. 그 ‘테러리스트’가 1월에 파리에서 사건을 일으켰다. 일부는 예멘의 알카에다계 조직과 관계가 있고, 나머지는 이슬람국가와 연계가 있다고 여겨졌는데, 2014년 6월 이슬람국가 창설 선언 이후, 서방 측 여러 나라에게 주된 적은 이슬람국가로 되어 있었다. 그 이슬람국가는, 그때까지의 이슬람 과격파 집단과는 달리 일정한 지배 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국가를 자칭하지만, 국제 사회는 이슬람국가를 국가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칼리프제의 부흥을 주장하는 이슬람국가는, 근대 이후 세계 편성 단위가 되고 있는 서양형 국가와는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테러 조직’이 형성한 이를테면 이상한 국가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래도 전쟁의 ‘적’으로는 될 수 있다. 사실 지금 미국과 프랑스는(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과 함께) 그 이상한 국가를 공습 폭격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프랑스도 올해 봄 이후 이 이슬람국가에 대한 공격에 가담해 왔다.


프랑스는 이슬람국가를 공습 폭격한다. 그러나 이슬람국가에는 전투기도 지대공 미사일도 없어, 공습 폭격을 받고도 한 대의 미군 폭격기나 프랑스군 폭격기를 격추할 수 없다. 단지 일방적으로 폭격을 당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다른 형태의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전투원을 적국으로 잠입시키거나 적국에 있는 동조자를 훈련시켜 기습 대원으로 삼아 공격하게 한다. 거기에는 주도면밀한 준비와 배치가 필요한 데 기습 대원은 소수가 좋다. 그렇지 않으면 적지에서 잠복도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적’에게 최대한 타격을 가하기 위해, 목숨을 건 공격을 감행한다.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특공’이다. 그 특공을 유럽과 미국의 언론은, 역사적인 선례에 맞춰 ‘가미가제’라고 부른다. ‘자폭 테러’는 흔히 ‘광기’라고 불리지만, 광기의 행동으로 내달리는 것은, 그들 나름의 ‘대의’ 즉 죽을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프랑스는 전쟁하에 있으며, ‘적’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면 파리가 공습 폭격을 당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적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그러니까 이 ‘전쟁’에서, 프랑스 본토는 평안 무사하고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을 그 나름대로 보내고 있었지만, 이런 ‘특공’의 위험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이 실제로 감행되면 파리는 갑자기 전쟁터가 된다.



프랑스의 ‘테러와의 전쟁’


“테러는 용납하지 않는다”, “테러에 굴하지 않는다”, “테러와 싸운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 표현에는 함정이 있다. 이들 표현은 ‘테러리즘’이라고 불리는 행위만을 분리해서 단죄한다지만, 이것은 말하자면 전투 행위이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항하는 전투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잘 알다시피 9․11 사건을 당해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다. 그때 미국은 처음부터 이것을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실제의 ’전쟁war'인 점을 선언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그동안, ‘전쟁’에 발을 들여놓는 데는 신중했고, 다만 미국과 일정 보조를 맞추기 위해 ‘테러와의 싸움la lute contre le terrorisme’을 부르짖어 왔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전쟁’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테러’를 없애기 위해 ‘싸운다’, 말하자면 방책을 다한다는 말이다. 이 두 개의 표현은 때로 의도적으로 혼동되기도 하지만, 한쪽이 문자 그대로 전쟁 행위라고 한다면, 다른 쪽은 비유적인 표현 방식이다. 프랑스는 그동안, 후자의 자세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샤를리 에브도 습격 사건을 계기로 ‘적’을 지명한 명확한 군사 행동에 나서서, ‘싸움’에서 ‘전쟁’으로 발을 내딛었다.


샤를리 에브도 습격 사건에는 아직은, ‘모하메드를 모독하는 풍자 신문’(또는 유대인 상점)이라는 개별적이고 한정적인 표적이 있었다. 범인들은 알카에다계 조직이나 이슬람국가와 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건 그 자체는 프랑스가 공화국의 원리로 중시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는 형태로 쉽게 수습되었다.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킨다’, ‘프랑스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슬로건하에, 광범위하게 대중적인 단결의 표명이 끓어오르고, 외국 여러 나라에서도 거기에 공명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 올랑드 정권은, ‘테러에는 굴복하지 않는다’고 하며 ‘테러리스트 소굴’에 대한 폭격을 단행했다(파르스 수상은 그때 ‘프랑스는 테러와 전쟁이 들어갔다’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이번은 그런 ‘주제’는 없었다. 갑자기 무차별 공격이 일어났다. 그래서 부상한 것은, 프랑스는 이제야말로 ‘테러와의 전쟁’ 당사국이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는 이야기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국가가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비대칭적’이라고 이야기되지만, 상대가 승인된 국가가 아니라도, 전쟁 그 자체는 ‘대칭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공격하면 적도 공격해 온다. 그 점이 이번 사건으로 새삼스럽게 드러났다.


올랑드 대통령은 곧바로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주초에 베르사유에서 개최된 상하원 합동 국민의회에서 비상사태의 3개월간 연장을 요구했다(비상사태는 통상 내각이 발령하지만, 행정부 권한을 강화하고, 사회에 제약을 가하고, 인권을 제한하는 성질상, 거기에는 12일간의 기한이 있으며, 연장을 위해서는 국회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같은 날로 이슬람국가에 대한 공습 폭격을 강화하고, 처음으로 이슬람국가의 수도로 알려진 라까(시리아 영내)를 폭격했다.


내친 김에 언급해 두자면, 프랑스에서는 이 ‘전쟁’으로 발을 내딛는 것에 관해서는 보수 정권 쪽이 신중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치안 유지(안보리 결의에 의한 국제치안지원부대)에는 프랑스도 파병했지만, 보수파인 시라크 정권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는 강하게 반대했다. 프랑스 보수파는 드골 이후 전통적으로 미국의 세계 전략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으려고 해 왔다. 보수파가 배출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이 점에서는 이색적으로, 매우 친미적이었지만, 현 사회당 정권은 오히려 사르코지에 가깝다. 그것은 전통적 보수파가 역사에 입각한 프랑스의 독자성에 천착하는 데에 반해, 엘리트 관료가 많은 좌파 정권 쪽이 말하자면 ‘합리적’이고, 미국이 주장하는 ‘보편주의’에 쉽게 쏠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번에도, 현 정권이 거침없이 ‘테러와의 전쟁’에 뛰어드는 와중에, 시라크 대통령 밑에서 수상을 지낸 도미니크 드 빌팽만이 그 위험과 무모함을 엄격하게 비판했다.<계속>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ji_kim&uid=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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