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폐기’와 ‘회귀’의 박근혜 정부 3년
- 경향신문 2016년 2월 18일 -
▲ 김준형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
박근혜 정부의 지난 3년은 ‘폐기’와 ‘회귀’로 점철되었다. 역대 정부들이 선거공약을 모두 지킨 것은 아니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대선 당시 복지와 남북관계 개선 등 진보 아젠다들을 선점함으로써 전임 정부 실패에 대한 공동책임에서 발을 빼 차별화에 성공했고, 결국 정권연장을 이루었다. 이렇게 본다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한 후 효용가치가 사라진 공약들을 폐기해온 것은 논리적 수순인 셈이다.
복지정책은 껍데기만 남았으며,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기초상식을 인정한 한 여당 중진의원은 복지와 함께 폐기되고 말았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은 지자체에 떠넘겼으며, 반값등록금은 흔적조차 없어졌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민생을 챙기겠다고 했던 약속도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통해 선거용에 불과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국민안전에 대한 책임방기는 물론이고 진상규명 요청마저 색깔론으로 틀어막은 것은 또 다른 대국민 약속이었던 통합노력까지 폐기한 것이다. 민초들의 삶이 어려워진 것을 야당 탓으로 돌리며 국회를 압박하는 것은 삼권분립을 훼손한 민주화 이전으로의 회귀다.
상대적으로 잘한다던 외교 분야에서도 폐기와 회귀의 연속이다. 지난 3년 순방외교 등으로 외견상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손에 쥔 결과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지정학적 저주라고 불려온 한반도에서 우리의 외교 역량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 분단과 대결구도의 지속과 주변 강대국의 세력경쟁 속에서 누구보다 다양한 지렛대를 확보하는 일은 필수적임에도 박근혜 정부는 지렛대 확보나 유지는커녕 가진 것까지 모두 내던져버렸다. 신뢰프로세스, 통일대박,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이니셔티브 등 대표적 구상들은 실천적 정책들이 아니었다. 입구도, 과정도, 출구도 없는 추상적 아이디어의 나열일 뿐이다.
과거사 왜곡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자세는 분노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동시에 대일외교의 지렛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를 통해 이를 전면 포기해 일본의 우경화와 재무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도대체 일본이 우리 정부에 물린 재갈이 무엇이었기에 불법성과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발언을 반복하는 등 협상파기의 충분한 이유가 있음에도 박근혜 정부는 한마디도 못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그나마 긍정적으로 구축해온 한·중관계도 사드 배치를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바람에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긴밀한 협상을 포함한 외교적 노력 없이 공개적으로 대북 제재요구와 사드 배치를 연계시킨 것은 중국의 입장에선 협박으로 느낄 수 있는 전혀 현명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앞으로 수년간 동북아에 한·미·일 군사협력을 비가역적으로 제도화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 실현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북한 핵실험과 로켓발사를 빌미로 전략무기들을 배치하고, 지역 미사일방어체계를 본격화하는 등 일련의 사태 전개가 마치 사전에 계획되고 합의된 것처럼 거침이 없다. 단순한 무력시위의 차원이 아니다. 마치 공해산업이 장마를 틈타 가지고 있던 오·폐수를 강물로 흘려버린 것과 비슷하다. 미국 정부는 한반도 위기상황을 아시아재균형 전략을 밀어붙일 기회로 활용하고, 한국은 이런 미국의 전략을 충실하게 실천하면서 냉전으로의 회귀에 앞장서는 형국이다.
더 큰 문제는 한·미·일 군사협력 또는 동맹이 구축된다 하더라도 3자간 동등한 협력관계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은 전작권 부재에다 미국의 통합적 군사네트워크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만한 기술과 입지도 없는 현 구도에서 꼼짝없이 미·일동맹의 하부구조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 수년 전부터 치밀하게 추진해온 일본의 집단자위권 확보 역시 미국의 동북아 전략 중심축을 일본으로 삼아 필요하다면 한반도 관리까지 맡기겠다는 일련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개성공단까지 폐쇄함으로써 남북 사이의 완충지대는 완전히 소멸됐는데,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더 없어진 반면, 위기상황은 더 심화될 것이다. 북한을 벌한다면서 대북 레버리지를 모두 내다버림으로써 출구를 막아버렸다. 결국 미·중의 자제력과, 그리도 불신하는 북한정권의 이성적 판단에 대한민국의 미래 운명을 맡기는 어이없는 역설에 처하게 되었다.
지난 3년간 박근혜 정부는 이런 식으로 폐기와 회귀를 반복해왔다. 박근혜 정부가 정말 폐기해야 할 것은 국익과 국민을 앞세우지 않는 사적 권력에 대한 욕심이며, 회귀해야 할 것은 진짜 평화와 진짜 민주주의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218204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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