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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호중 - 차벽과 물대포, 왜 문제인가

irene777 2016. 3. 3. 02:45



[정동칼럼]


차벽과 물대포, 왜 문제인가


- 경향신문  2016년 2월 23일 -





▲ 이호중

서강대 교수



민중총궐기 국가폭력조사단은 약 3개월의 활동 끝에 작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한 국가폭력의 실체를 조목조목 지적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경찰은 집회가 개최되기도 전에 ‘갑호비상령’을 발령해 전국에서 246개 중대 2만명에 이르는 경찰병력을 동원했다. 집회 당일 서울광장 등에서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광화문, 종로, 안국동 일대를 차벽으로 철저하게 봉쇄했다. 경찰이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동원하고 차벽을 세웠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청와대 방어벽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 인근의 집회를 금지하고 봉쇄하는 경찰의 태도는 더욱 노골화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집회장소를 항의의 대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금지한다”고 천명했지만, 최고법원의 결정도 경찰 폭력 앞에서는 너무나 왜소해 보인다.


무엇보다 심각한 국가폭력의 양상은 거대한 차벽과 물대포의 사용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국회 안행위 보고에서 차벽을 ‘폭행 예방’을 위한 적법한 조치라고 강변했다. 폭력행위를 예방한다는 미명하에 평화로운 집회·시위를 차벽으로 봉쇄한다는 말인데, 이는 악의적이거나 아니면 무식한 소치이다.


신고하지 않은 집회, 경찰이 금지통고한 집회일지라도 평화적인 집회는 보호돼야 한다는 것이 국제인권 및 우리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이다. 더구나 폭력행위가 예상된다는 단순한 추측만으로 집회의 자유를 규제할 수 없다는 점은 국제인권규범에서 한결같이 강조되고 있다. 일례로, 유럽의회 산하의 베니스위원회에서 발간한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에 관한 지침>(2010)은 “공공질서를 해칠 위험을 가정하는 것은 평화적인 집회를 금지할 정당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 헌법재판소에 의하더라도 차벽 설치의 요건은 매우 엄격하다, 차벽은 “집회의 조건부 허용이나 개별적 집회의 금지나 해산으로는 방지할 수 없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일 때만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한다. 여기에서 ‘급박성’ 요건은 집회를 당장 제지하지 않으면 곧 폭력행위로 인한 생명·신체에 대한 해가 발생할 상황이라서 달리 이를 막을 방법이 없는 절박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발생할지도 모르는 폭력행위를 “미연에 예방한다는 명목”으로는 차벽 설치는 물론 집회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인권선진국의 집회 현장에서 차벽을 볼 수 없는 이유이다.


물대포의 폭력성도 매우 심각하다. 11월14일 경찰의 물대포는 사용 시간과 사용량에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물대포는 강력한 수압으로 인해 뇌진탕, 골절, 안구손상 등의 상해를 입힐 수 있다. 특히 특정인에 대한 직사살수는 치명적인 준살상무기에 해당한다. 직사살수에 맞은 백남기 어르신은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집회에서 물대포 사용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경찰의 물대포 사용 승인 요청에 대해, 영국 내무부 장관은 2015년 7월15일 치명적인 부상의 위험이 매우 크다는 점을 근거로 경찰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한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행정법원은 2015년 11월18일 집회 시 경찰의 물대포와 최루액 사용에 대하여 “만약 시위대 일부가 불법행위를 했다면 경찰은 개개의 행위자를 추적·체포·구금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확실한 위험이 없는데도 경찰이 물대포 등으로 위협하며 시위 자체의 해산을 종용하고 물대포와 최루액으로 직접적인 강제력까지 동원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로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월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방한했다. 한국의 집회규제에 대한 조사결과 그는 “일부 폭력적인 참가자가 있었다는 이유로 집회 전체를 폭력으로 매도해선 안된다. 이를 이유로 집회 전체를 해산시키거나 주최자를 처벌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 침해”이며, “물대포는 매우 위험한 무기”라고 경고하면서 한국을 떠났다.


그러므로 단언컨대, 집회를 규제하기 위한 차벽과 물대포는 그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국가폭력이다. 물리적 충돌은 집회 참가자들이 폭도임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의 위법한 국가폭력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을 우리 사회는 인식해야 한다. 경찰은 차벽으로 평화적인 집회를 봉쇄하고 물대포로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짓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2232041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