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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지봉 - 그럼에도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irene777 2016. 3. 22. 03:05



[정동칼럼]


그럼에도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 경향신문  2016년 3월 20일 -





▲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主權)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이때 주권이란 ‘국가의사를 전반적·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최고의 독립된 힘’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민주국가들이 예외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대의제 원리에 의해 이러한 국가의사의 결정권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게 위임된다. 따라서 대의제하에서 평상시 현실적인 주권의 행사자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이다.


국민은 비록 이론적으로는 주권의 보유자이지만, 현실적으로 대표를 뽑는 선거일에 투표함에 표를 넣을 때를 제외하고는 국민이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으로 주권을 행사할 기회가 거의 없다. 우리 국민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4년에 하루, 대통령 선거를 위해 5년에 하루만 비로소 현실적인 주권자가 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선거 때만 주권자가 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헌법재판소도 “국민은 오직 선거에 의해서만 국정에 참가하는 것”이며 “민주정치에 있어서 선거는 가장 중요한 국가적 행사의 하나이며 국법 질서의 기초가 된다”고 여러 결정문에서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선거는 중요하다. 선거는 국민의 주권을 현실화하는 기능, 그러한 주권 행사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교체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국민 대표기관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기능도 가진다.


약 3주 앞으로 다가온 이번 4·13 총선에서는 이래저래 선거를 통한 국민의 주권행사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다. 우선 선거구 획정이 한참 늦어져 상당 기간 ‘깜깜이 선거’의 상황이 지속되었다. 재작년 10월30일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국회에 법 개정 시한으로 지난해 12월31일을 제시했음에도 국회가 그때까지 이를 개정하지 않아, 올해 1월1일부터 한 달여 동안 전국에 걸쳐 선거구가 존재하지 않는 ‘선거구 부존재’의 위헌적 상황이 지속되었다.


예비후보자들은 자신이 출마할 지역구가 아닐 수도 있는 지역에서 명함을 돌려야만 한 반면, 이미 국회의원으로서의 의정활동을 통해 자신의 지역구나 인접 지역구에 인지도를 높여 놓은 현역의원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했다. ‘깜깜이 선거’가 정치 신인과 현역의원 사이에 선거에서 큰 불평등을 초래한 것이다. 이런 선거구 부존재 상황은 한 달 이상 지속되다가 선거일을 불과 42일 앞둔 지난 2일에야 선거구획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가까스로 해소되었다.


여기에 더해 여야 각 정당들이 공천을 놓고 여러 형태의 공천 갈등을 일으킴으로써 오는 25일로 예정된 후보등록 마감일을 나흘 앞둔 현재까지도 각 정당의 공천작업이 완료되지 못한 상태다. ‘깜깜이 선거’가 아직 진행 중인 것이다. 이러한 각 정당들의 공천과 관련해 당원들이나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공천’(公薦)이 아니라 각 정당의 계파이익이 지배하는 ‘사천’(私薦)이 행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헌법 제8조가 “정당의 목적·조직과 활동은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하여 당내 민주주의를 규정하면서 공직선거후보자의 공천을 포함한 당의사의 결정이 당원의 뜻에 따라 상향식으로 민주적 원칙하에 이루어져야 함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헌법보다는 계파이익을 앞세운 위헌적인 패권공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 정당들에 의해 명확한 기준도 없이 단수후보 추천지역들이 발표되고 있고 그에 반발한 후보들의 탈당이 이어지고 있다. 연일 ‘공천 대학살’에 대한 뉴스가 지면을 장식하면서, 권모와 술수, 배신과 보복이 판치는 정치현실을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알고 싶어하는 각 정당이나 후보의 정책 및 비전 제시는 발견하기 어렵다. 선거가 제대로 된 정책경쟁의 모습에서 한참 이탈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이 왜 벌어지는 것일까? 각 정당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우습게 알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권자 의식을 자각하고 4월13일에 꼭 투표장에 가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국민을 우습게 알고 선거철에만 국민을 떠받드는 척하며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는 이들을 가려내어 교체해야 한다. 이런 정치가 싫다며 정치에 대한 냉소를 보내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기권의 자유에 기대어 주권자로서의 투표 기회를 포기한다면, 우리 정치는 결코 나아질 수 없다. 우리의 아들, 딸과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올해 4월13일에는 꼭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20205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