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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민 - ‘한국형 알파고’에 거는 기대

irene777 2016. 3. 24. 15:36



[서민의 어쩌면]


‘한국형 알파고’에 거는 기대


- 경향신문  2016년 3월 22일 -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끝난 지 이틀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미래창조과학부가 내놓은 폭탄선언이다. 앞으로 5년간 국가가 1조원, 민간에서 2조5000억원, 모두 3조5000억원을 투자한단다. 바둑의 최고수인 이세돌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알파고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도 저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탄식하던데, 미래부의 발 빠른 선언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물론 바둑 좀 둬본 어른들에게도 큰 희망을 선사했으리라. 인터넷의 반응도 뜨거웠다.


“유행에 민감한 대한민국.” “만날 뭐만 하면 한국형, 지겹다.” “돈 버리는 소리가 들린다.” “로봇 물고기는 뭐하냐?”


문제는 방향이다. 즉 어떤 기능을 가진 알파고를 만들지가 관건이다. 바둑 잘 두는 알파고는 이미 구글이 만들었다. 물론 우리나라 기술이라면 구글 알파고에 불계승을 거둘 알파고를 만들 수 있겠지만,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미 구글에 열광한 사람들이 뒤늦게 나온 한국의 알파고에 관심을 둘 것 같진 않고, 또 바둑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구글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알파고를 만든다면, 그래서 우리 실정에 맞게 잘 이용한다면 3조5000억원의 비용도 아깝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한국형 알파고에 어떤 기능을 탑재해야 할까? 혹자는 대통령을 대신할 알파고를 만들자고 한다. 현 대통령에게 반감을 가진 좌파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데, 그들이 간과하는 것은 아무리 잘 만든 알파고도 현 대통령만큼의 정치력을 보일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올 초 600조원을 돌파했다. 놀라운 점은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5년간 309조원에서 440조원을 만드는 데 그친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3년 만에 160조원을 더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는 점. 그럼에도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니, 대통령의 목표는 아마도 세계 최대의 부채국가일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런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오직 합리적인 판단만 하는 알파고는 집권하자마자 세금을 올리고 나라의 쓰임새를 줄여버릴 테니까. 부채의 규모보다 세계 1위가 주는 소소한 기쁨이 있다는 걸 알파고는 알 턱이 없다. 북한이 잃는 것보다 우리의 손실이 수십배에 달하는 개성공단 폐쇄도, 성적(性的)으로 문제가 많은 분이 대변인이 되는 것도 알파고가 대통령이라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대통령을 대신할 알파고를 만들지 못한다고 할 때, 차선책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대통령을 도울 알파고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알파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여당의 공천이란 나라는 어찌 되든 대통령에게만 충성할 사람들을 가려내는 과정,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대통령에게 충성할 사람이 누군지 알 방법이 없어서다. 공천 여부가 화제가 된 유승민 의원을 보라. 2004년 당시 초선이던 유승민은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에게 충성한 덕분에 비서실장으로 발탁됐고, 그 뒤에도 쭉 대통령만 바라보는 정치를 해왔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원조 친박’인 셈, 하지만 그의 충성심은 가짜였다.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세월호 시행령 파동이 아니었다면 그가 대통령을 배신할 것임을 우리는 절대로 알지 못했으리라. 비단 유승민뿐만이 아니다. 지금 수많은 이가 ‘친박’ ‘진박’, 심지어 ‘진진박’을 자처하며 자신을 공천해 달라고 울부짖지만, 그들 중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대통령에게 배신의 칼을 겨눌 사람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의원으로서 권력을 향유할 2016년, 2017년이 대통령의 레임덕과 겹친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사람을 공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한국형 알파고가 필요하다. 누가 대통령의 사람인지 잘 따져서 대통령의 업무를 도와줄 알파고가. 그런 걸 어떻게 만들겠느냐고 하겠지만,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세돌과 바둑을 둔 알파고를 떠올려 보라. 이세돌이 뒀던 판을 모조리 학습하고, 이세돌이 바둑돌을 둘 때마다 십여수 앞을 내다보는 게 가능하다면, 한 정치인의 삶을 입력하고 그의 앞날을 내다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게 어렵다면 ‘박 대통령은 늘 옳다’ ‘박 대통령이 잘되는 게 나라가 잘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아이큐는 430이다’ 같은 말로 끊임없이 사람들을 세뇌시켜 충신을 양성하는 알파고라도 만들어 보자. 우리나라엔 이 분야 전문가들이 아직 많이 생존해 계시니, 비용절감의 효과도 있다.


집권 초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선언한 바 있다. 아쉽게도 그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고, 집권 4년째가 다 되도록 창조경제의 실체는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한국형 알파고가 만들어져 정치개혁을 이루고, 또 미얀마나 수단, 파키스탄 등 여러 선진국들에 수출까지 된다면, 더 이상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묻는 이는 없을 것 같다. 한국형 알파고가 기대되는 이유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222040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