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죽은 시민의 시대
- 경향신문 2016년 3월 29일 -
▲ 조대엽
고려대 교수 (사회학)
한바탕 권력의 ‘행패’를 본 듯하다. 25일 마감한 여야의 총선 공천과정은 그야말로 막장이고 난장이었다. 야권연대를 거부한 안철수의 오만이나 비례대표 추천과정에서 보인 김종인의 독단은 오히려 난장의 리허설이었다. 배신자를 심판하라는 대통령의 일갈과 오로지 그 뜻을 좇아 황포하게 휘두른 이한구의 눈먼 창, 후보등록 마감일에 5곳의 공천승인을 거부한 김무성, 곧이어 2곳 공천과 3곳 무공천으로 야합하고만 그의 무딘 칼. 최고 권력의 뜻에 따라 ‘친박’이니 ‘진박’이니 하는 패거리 정치가 만든 난장의 절정이 아닐 수 없다.
이 무도한 난장의 정치판에는 유권자도 시민도 없다. 오픈프라이머리는 애당초 수용되지 않았고, 양당의 당헌 당규에 규정된 국민참여 선거인단대회, 국민참여경선, 국민경선, 당원경선, 시민공천배심원제 등 상향식 공천절차 또한 무시되었다. 어찌할 수 없이 권력의 굿판을 망연자실 바라만 보는 시민의 가슴엔 박탈감만 쌓였다. 도저히 근대적 정당의 모습으로는 볼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유권자를 조금이라도 의식한다면 이럴 수는 없다. 시민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더더욱 이럴 수 없는 일이다. 정당 내부에서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정해진 유권자는 기계처럼 표를 찍는다는 생각인 게다. 정치권력을 틀어쥔 이들의 눈에 시민이 죽은 지 오래고, 유권자는 영혼 없는 ‘좀비’가 된 지 오래다. 죽은 시민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정치가 시민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나마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마저 시민의 삶과는 점점 더 무관해지고 있다. 정치와 민주주의가 1987년에 멈추어 있다.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낸 ‘87년의 정치’는 이제 중앙집권적 국가주의와 이념정치와 지역주의로 남아 한 발짝도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들이닥친 정글과도 같은 시장경쟁의 질서와 함께 우리 ‘사회’는 부서져 해체되기 시작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시민 대부분의 삶은 위태롭게 흔들렸다.
마침내 ‘97년의 사회’는 우리 시대의 청년들을 ‘N포 세대’, 미래 없는 ‘수저계급’, ‘헬조선’의 현실로 몰아넣었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절망감이 만연하다.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의 비정상은 언제나 시민의 힘으로 정상화되었다. 4월 혁명이 그랬고 6월 항쟁이 그랬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첫 번째 민주주의를 ‘4월의 시민’이 만들었고, 두 번째 민주주의를 ‘6월의 시민’이 만든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끌었던 바로 그 위대한 ‘시민’이 2016년 총선을 앞둔 지금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로 충만했던 그 시민들이 오늘날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리는 ‘위축된 대중’이 되고 말았다. 남들과의 차이로 인한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획일적 대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아가 시민들은 경쟁과 효율의 쳇바퀴에 갇혀 끝없이 일하고도 또 일을 찾는 ‘강박적 대중’으로 지쳐 있다. 지난 20년의 시간 동안 87년의 정치와 97년의 사회 속에서 한국의 시민은 ‘거세된 대중’이 된 셈이다.
능동적 시민이 ‘거세된 대중’으로 바뀐 것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 것은 정치권력이다. 시민이 죽은 곳에 그래서 난장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87년의 정치는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곪고 말았다. 87년의 정치가 거세된 대중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이다. 87년의 정치와 97년의 사회가 기형적으로 결합된 이 뒤틀린 시간이 더 지속된다면 우리 사회는 치유하기 어려운 현실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거세된 대중으로 가득 찬 이 비관적 현실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뒤엉킨 정치의 굴레를 벗어나는 일은 혁명보다 더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더 가혹한 현실을 맞이하기 전에 87년의 정치를 벗고 97년의 사회에서 탈출하는 몸짓을 시작해야만 한다. 이번 총선이 그 마지막 시간일 수 있다.
4·13 총선은 무엇보다도 죽은 시민의 시대로부터 탈출하는 출발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시민의 귀환’이 시대의 절실한 요청이다. 87년의 정치와 97년의 사회 속에 내동댕이쳐진 시민의 고단한 삶을 떠올리면 이번 4·13 총선은 ‘세 번째 민주주의’를 향한 서막이 되어야 한다. 시민이 다시 귀환할 때다. 4월은 죽은 땅에 라일락꽃을 피우며 기억과 욕망을 뒤섞어 잠든 뿌리를 봄비로 일깨우는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은” 땅에서 겨울처럼 죽었던 ‘시민’이 다시 깨어나야 하는 우리의 4월은 어쩌면 더 잔인하다. 깨어나 눈과 귀를 열고 정당과 후보를 가려낸 후 투표장으로 향해 시민이 살아 있음을 알려야 한다. 시민의 귀환을 알려야 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2920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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