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의(牛意) 마의(馬意) 귀의(鬼意) 민의(民意)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들이 정부와 재벌의 뒷돈 받아 권력의 나팔수 노릇
진실의길 정운현 칼럼
- 2016년 4월 26일 -
1952년 7월 피난지 부산에서 소위 ‘발췌개헌’으로 불리는 1차 개헌이 이루어졌다. 골자는 대통령 직선제. 그해 8월 2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이 재선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54년 11월 이승만 정권은 또다시 개헌을 추진했다. 이른바 ‘사사오입개헌’으로 불리는 2차 개헌이다. 골자는 중임제 폐지. 제헌헌법에는 대통령의 임기는 4년, 1회에 한해 중임이 가능토록 규정했다. 2차 개헌은 결국 이승만의 3선용이었다.
1956년 5월 15일로 예정된 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승만의 자유당은 3월 5일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당 총재 이승만을 대통령 후보에, 당 중앙위원회 의장 이기붕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두 사람의 후보 지명은 예상된 일이었는데 돌연 뜻하지 않은 일이 터졌다. 이승만이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이다.
이승만은 후보로 지명된 당일 자유당에 서한을 보내 대통령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유는 세 가지. 자신은 고령(81세)이며 3선은 민주국가에서 드문 일일뿐더러 지난 8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통일대업을 이룩하지 못한데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겉으로는 그럴 듯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승만의 속셈을 꿰뚫고 있었다. 사사오입개헌으로 인한 국민적 반감을 희석시키려는 ‘정치 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튿날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승만의 불출마 선언을 철회하라는 ‘민의’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거리에는 이승만의 출마를 촉구하는 구호와 전단이 난무했고, 경무대(현 청와대) 앞은 경찰의 묵인·방조 하에 연일 시위 군중들로 넘쳐났다. 또 전국 곳곳에서 자유당·국민회·애련(애국단체연합회)·어민회·부인회·노총 등 이승만 친위단체들이 ‘이승만 대통령 3선 출마 호소 궐기대회’를 잇달아 열었다. 근 20일 만에 전국적으로 시위횟수는 1천여 회, 참가인원은 450만 명을 넘었다.
이 과정에서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우마차(牛馬車)조합에서 우마차 800대를 동원해 서울 시내를 누비며 이승만의 3선 출마를 촉구했다. 행사에 동원된 소와 말 때문에 서울시내는 똥 바다가 되었고, 거리에는 쇠똥, 말똥 냄새가 진동했다. 이때 생겨난 말이 바로 ‘우의(牛意)·마의(馬意)’다. 민의가 지나쳐 소(牛)와 말(馬)의 뜻(意)까지 이승만의 출마를 촉구하고 나섰다는 얘기다. 그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었다.
▲ 우마차 조합원들의 우마차 시위로 서울시내는 소똥, 말똥 냄새가 진동했다.
전국이 이승만 출마 촉구 시위로 몸살을 앓자 이승만은 “민의(民意)는 글로 써도 된다”고 점잖게 타일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국에서 300만 명 이상의 ‘민의’가 날인한 탄원 혈서가 줄을 이었다. 그밖에 메시지 2,152통, 전보도 7,300통에 달했다. 두 차례에 걸쳐 불출마를 고집하던 이승만은 3월 23일 결국 본심을 드러냈다. 이승만은 “민의를 수용하여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이승만은 한 외국기자와 만나 “나는 국민들이 원한다면 자살까지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3월 27일 열린 국회에서 이승만의 불출마 번복이 말썽이 됐다. 민주당의 조재천 의원은 우마차까지 동원한 관제데모를 지적했다. 또 백지(白紙)연판장에 죽은 사람의 도장이 찍힌 사례를 들어 “‘귀의(鬼意)’까지 동원됐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이승만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라이벌인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가 유세 도중 열차 안에서 급서한데다 진보당의 조봉암 후보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인 덕분이었다.
전경련이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에 억대의 돈을 줬다는 언론 보도가 나와 요 며칠 논란이 일고 있다. 그간 어버이연합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위안부 협상 등에서 정부 편을 들어왔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가 이들 단체에 집회를 지시했다고 한다. 결국 친정부 성향의 보수단체들이 정부와 재벌의 뒷돈을 받아 챙기며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했다는 얘기다. ‘우의·마의’가 등장한지 꼭 60년 만의 일이다.
이번 일을 두고 역사학자 전우용은 트위터에 “돈 받고 시위에 동원되는 부류는 인간이 아니라 ‘마소’라 해야 한다”고 썼고,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공권력이 이보다 더 썩을 수는 없다. 지금이 8.15 직후 ‘해방’ 정국이냐?”고 물었다. 요 몇 년 사이에 나라가 망조가 들었다. 국파(國破)는 이제 시간문제인 것 같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wh_jung&uid=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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