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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태훈 - ‘뒷북치다’

irene777 2016. 5. 10. 15:22



[정동칼럼]


‘뒷북치다’


- 경향신문  2016년 5월 5일 -





▲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뒤늦게 쓸데없이 수선을 떨 때 뒷북친다고 한다.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일이 터지자 대응도 못하면서 허둥대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 사고가 나면 뒷북치며 수습해봐야 소용이 없다. 인명피해가 나면 더욱 그렇다. 메르스 사태 때 정부 당국의 늦장대응으로 사망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대통령의 반응도 사태가 터지고 한참 후에나 나왔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시 정부 당국의 안이한 상황판단과 늦장구조로 희생자는 늘어만 갔다.


사고현장에서는 청와대 보고를 챙기다가 시간을 허비했다는데 보고를 받았다던 대통령은 뒤늦게 나타나 상황파악이 안된 듯 엉뚱한 질문만 늘어놓았다. 아직도 왜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희생돼야 했었는지 진실을 밝혀내는 것도 어려워 보이는데 피해자와 그 유족을 보듬어야 할 정부는 나 몰라라 하는 상황이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치면 다행이지만 고치는 시늉만 있었을 뿐 달라진 것이 없으니 뒷북만 친 꼴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할 때를 놓치고 허둥댈 때도 뒷북친다고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보여준 철면피 기업의 뒤늦은 사과가 그렇다. 국민과 피해자 가족 앞에서 잠깐 고개를 숙이고 ‘빨래 끝’하듯 ‘사과 끝’하는 살인기업의 대표를 보면서 닥쳐올 ‘옥시 끝’ 운동의 피해를 줄여보려는 기업인의 손익계산서가 겹쳐진다. 이 사태에서도 역시 대통령은 이제야 피해자들의 아픔이 가슴에 와 닿았는지 몇 마디 지시를 내렸다.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여당도 이에 맞추어 야단법석이고 검찰도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수사가 늦게나마 진행될 것처럼 보인다. 때 놓친 검찰총장의 철저수사 주문도 뒷북치기 그림에 한 점을 찍는다. 야당도 특별법을 제정하느니, 청문회를 하느니 허둥대기는 마찬가지다. 참사의 연속에서 보여준 정부와 대통령의 뒷북치기는 이제 늦장행정의 대명사처럼 따라다닌다. 그동안 수수방관하던 환경부는 생활화학제품 관리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원료물질 위해성 평가와 안전·표시기준을 강화하고, 살생물제 전반에 대한 관리체계를 도입하겠다는 대책을 부랴부랴 내놓았다.


왜 이런 참사가 끊이질 않는가. 왜 그때마다 정부는 뒷북치면서 허둥대는 것일까. 참사와 뒷북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은 그냥 붙여진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 기업의 생명을 국민의 생명보다 중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시민의 인권이나 국민의 생명보다 경제가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기업 프렌들리, 규제프리를 외쳐대면서 참사는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규제가 느슨해지고 안전장치가 풀리면 시민의 생명은 위협받게 된다. 그래서 산재사망률도 교통사고 사망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상위권에 자리하게 됐다. 결함제조물에 의한 인명피해율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비대중에게 정신적 및 신체적 침해를 끼칠 결함제조물이 시장에 널려 있어 언제라도 누구에게나 닥칠 위험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 있던 유해 화학물질의 피해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결함제조물의 위험이 다가올 것인지 예측할 수도 없다. 위험발생의 장소와 대상이 무차별적이고 우리 모두라는 점에서 더욱 두려워진다.


끊이질 않는 참사의 종지부를 찍고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세월호 참사로부터 마지막 교훈을 얻어야 한다. 뒷북치기가 쓸데없는 수선떨기가 되지 않으려면 원인과 책임자 등 진상규명이 선행돼야 한다. 누구 한 놈 본때 보이기로 처벌하고 돈으로 죗값을 대신하거나 사과받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사람이 죽는 허망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관련된 규제는 강화돼야 한다. 공산품이든, 교통수단이든, 원전이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는 국민 생명과 건강, 우리가 잘살면서 후손에게 물려줄 환경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절대로 규제철폐와 완화의 기준을 산업발전에 저해가 되는가에 두어서는 안된다. 기업과 경제를 살리겠다고 사람 죽이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규제에 규제를 엮어 촘촘한 안전망을 짜내야 뒷북치기가 소용 있게 되는 것이리라. 수많은 목숨을 대가로 얻은 값진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긴 지금에야 이 주제로 글을 쓰는 나도 뒷북치기인지도 모른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052046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