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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지봉 -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과 헌법

irene777 2016. 5. 22. 01:52



[정동칼럼]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과 헌법


- 경향신문  2016년 5월 15일 -





▲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대통령선거에서 유효투표의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있으면 그 후보를 당선인으로 결정하고, 과반수를 얻은 당선인이 없을 때는 최다득표를 한 2인을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하자는 결선투표제 도입이 오래전부터 주장돼 왔다. 이에 대해 최근 결선투표제 도입은 위헌이라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위헌주장이 대표적 근거로 삼는 것은 첫째, 헌법 제67조 2항이다. 이 조항은 대통령선거에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헌주장은 이에 근거해 헌법이 최고동수 득표자가 2인 이상일 때에만 결선투표를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조항은 대통령 직선제하의 일반적인 결선투표제 조항이 아니다. 대선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때’가 아니라 ‘동수 최고득표자’가 나왔을 때를 규정한 조항이고, 결선투표의 주체도 유권자 ‘국민’이 아니라 ‘국회의원’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선 유권자 수가 4000만명이 넘는 현 상황에서 두 대선후보가 일의 자릿수까지 일치하는 최고득표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조항은 대통령 국민직선제로 전환하면서,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을 상황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국회 간선제’라는 국회의 형식적 권한을 하나 추가해준 의미밖에 없다. 따라서 제67조 2항이 결선투표제 조항이라거나, 이 조항을 근거로 헌법이 결선투표제를 일부러 채택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헌법 제67조 2항에 대한 확대해석이다.


둘째, 결선투표제 위헌주장은 “대통령 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고 규정한 헌법 제67조 3항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헌법이 과반 득표를 못해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대선 후보자가 ‘1인’인 경우에 한해 그 당선의 상한선을 정하고 있을 뿐이지, 여러 명의 대선 후보자가 출마해 결선투표까지 가는 상황에 적용되는 조항이 아니다. 결선투표와는 무관한 조항이다.


이처럼 현행헌법은 후보자가 1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득표율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헌법 어디에도 대통령 당선인이 되기 위한 득표기준을 정한 조항이 없다. 오히려 헌법 제67조 5항은 “대통령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하여 대통령 선거제도의 전반에 대해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회의 입법형성권을 넓게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행 공직선거법 제187조 1항에서 대선 시 과반을 넘지 못하더라도 “유효투표의 다수를 얻은 자를 당선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결선투표제 도입을 위해서는 헌법이 아니라 이 공직선거법 조항을 개정하면 된다. 공직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치열한 국민적 공론화 과정이 존재해야 하고 결선투표제 도입을 위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현행헌법하에서 결선투표제 도입이 법 개정보다 훨씬 까다로운 헌법 개정의 과정을 꼭 밟아야 할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한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은 헌법상의 국민주권 원리와 민주주의원리에 더 부합하는 헌법합치적인 조치라고 믿는다. 대통령 국민직선제를 규정하는 이상,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은 유권자의 과반수 지지 혹은 적어도 투표자의 과반수 지지를 얻을 때 안정적으로 확보될 수 있다.


대통령 국민직선제를 회복한 현행헌법하의 87년 대선 이후에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까지 포함시키면 전체 유권자 30% 내외의 지지만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2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후보가 3분의 1의 지지만으로 대통령이 되어 3분의 2의 국민까지도 끌고 가는 것이다. 이로 인해 3분의 1짜리 대통령의 집권으로 인한 집권의 정통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정권의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는 위험에 수시로 노출됐다.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대선 투표율 상승효과도 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선호를 표출할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 결선투표에서는 평균적으로 투표율의 상승효과가 나타났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특정 정당이나 특정 대선후보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벗어나, 무엇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결단인지, 헌법상의 국민주권 원리와 민주주의 원리를 제대로 구현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152054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