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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한종 - 국론분열 막기 위한 보훈처의 역할

irene777 2016. 5. 23. 02:23



[정동칼럼]


국론분열 막기 위한 보훈처의 역할


- 경향신문  2016년 5월 17일 -





▲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역사교육학과)



국회의원 총선거를 계기로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 사이에 소통과 협치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은 불과 사흘 만에 깨져버렸다. 서로 협력하여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지키지 않는 일이야 으레 되풀이되어 왔던 것이기에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쉽기는 하다. 협치 약속이 불과 사흘밖에 가지 않은 탓에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아무런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가, 약속이 깨지게 된 계기가 5·18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보훈처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때문에 더욱 그렇다.


과연 오랜만에 나온 정치권의 협치 약속을 깰 만큼 이 노래의 제창을 막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더구나 이런 결정을 내린 보훈처는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의 영예로운 삶이 유지·보장되도록’ 지원하는 기관인데 말이다. 보훈처라면 오히려 5·18에 관련된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는데 앞장서고, 행사가 원만히 진행되도록 힘써야 하는 기관이 아닐까?


보훈처의 결정은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3당 원내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인해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마련해볼 것을 지시하겠다고 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접한 보훈처가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기존처럼 제창이 아니라 부르고 싶은 사람만 부르는 합창 방식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 노래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가 있는 상황에서 제창을 하는 것은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훈처의 이런 판단은 사회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부추겼다. 일부 사람들은 부르고 싶은 사람만 노래를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5·18행사는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고 당시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자리다. 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반영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보훈처가 이 행사의 주관부서가 되는 것이 그런 이유일 것이다.


보훈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이 사회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근거로, ‘님을 위한 행진곡은 많은 국민이 혁명가요로 생각하는 곡’으로, 앞서 죽은 선배를 따라 목숨 걸고 투쟁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수단체들이 주장한다는 사실을 든다.


그러나 과연 이 노래를 그런 생각을 가지고 부르는 사람이 있을까?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 중 일부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투쟁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추모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 뒷세대 사람들에게 똑같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노래를 부르고 그들의 정신을 되새긴다고 해서 그들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되풀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이치라면 과거 위인들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그 길을 되풀이하여 밟아야 할 것이다.


사회 일부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김일성을 찬양하고 북한의 혁명완수를 기원하는 노래라고 주장한다. 노래에 나오는 ‘님’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며,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의 ‘새날’은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제창이건 합창이건 간에 이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어쩌면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정말로 노랫말이 이런 의미를 가지는지는 정부 차원에서 명백히 밝혀야 할 문제이다. 그렇지만 이 노래를 합창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은 적어도 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에 그런 의미가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현 정부도 인정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노래를 제창하지 못하게 할 이유도 없다. 더구나 지난날 이미 12년이나 별다른 문제없이 제창을 한 적도 있지 않나?


보훈처가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보수단체들의 눈치를 본 결과라는 주장도 있고, 보훈처장 개인의 소신이라는 의견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뜻을 헤아렸다고 보기도 한다. 나는 보훈처장의 판단이 대통령의 진짜 의지를 읽은 것인지, 반대로 뜻을 거스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주문한 박 대통령의 요구가 이런 뜻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보훈처의 결정이 어떤 판단에서 나왔든 간에 ‘국론 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좋은 방안’이 아님은 명백하다.


국론분열을 피하고 국민들 사이에 갈등을 줄이기 위한 보훈처의 역할은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이들로 하여금 5·18희생자를 애도하고 아픔을 함께하라고 권하는 일이다. 그것이 아물어가는 피해자의 상처를 다시 곪지 않게 하고, 나아가 앞으로 한국사회에 이런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172049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