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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대엽 - 위태로운 노동의 시대

irene777 2016. 5. 25. 13:59



[정동칼럼]


위태로운 노동의 시대


- 경향신문  2016년 5월 19일 -





▲ 조대엽

고려대 교수 (사회학)



총선이 끝난 후 노동계에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과 성과연봉제라는 두 개의 쓰나미가 동시에 덮친 것이다. 조선·해운산업은 이미 사양 산업이 된 지 오래기 때문에 정부의 구조조정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과감하고 근본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간 세계경제의 오랜 불황으로 해운과 선박수요가 크게 줄었고 그로 인한 위기는 상수가 되었는데도 정부와 기업의 방만이 부실을 키운 데 있다. 이 거대한 부실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의 것이 되고 말았다. 다급하고 대책 없이 감행하는 구조조정이 이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조선·해운산업의 구조조정은 대량해고로 인한 노동의 위기를 예고한다. 이와 달리 금융부문과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는 그나마 힘겹게 유지되고 있는 노동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또 다른 노동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성과주의는 금융이나 공공부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신자유주의를 실패로 이끈 요인으로 판명된 바 있다.


성과주의는 동기부여나 실적 향상, 전문 인재육성 같은 목적을 이루기보다 실제로는 대부분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대학에서도 성과주의가 만든 쓸모없는 논문 양산에 대한 성찰과 함께 인센티브제도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영국 은행들은 성과연봉 도입 후 불완전 판매로 벌금 67조원을 물어 신뢰도 추락을 경험한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피디아, 어도비 등 세계적인 기업들도 성과연봉제를 폐지했다. 일본에서도 미쓰이물산, 후지쓰, 맥도널드 등에서 성과주의는 실패했다.


무엇보다 월스트리트에서 출발한 2008년의 세계경제 위기는 리스크가 누적된 파생금융상품에서 비롯되었고 바로 이 같은 파생상품의 개발은 성과주의의 효과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성과연봉제의 확대는 금융소비자에게는 리스크를 가중시키고 노동공동체를 지탱하는 노동조합을 해체시키는 살벌한 무기가 될 수 있어 뒤끝이 더욱 걱정스럽다.


구조조정이든 성과연봉제든 노동의 위기는 자본의 위기와 맞물려 있다. 우리 사회처럼 비윤리적인 자본주의에서 자본 축적의 위기, 즉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리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가 떠안게 된다. 그 최후의 사회적 고리에 노동자가 위치하고 나아가 비정규직 노동자, 파견노동자가 위치한다. 성장이 멈추면 먼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배제된다. 성과연봉제 같은 경쟁 장치로 더 많은 수익을 노리는 만큼 누군가는 경쟁에서 탈락해 일터를 떠나야 한다. 자본의 위기 앞에 언제나 노동은 가장 먼저, 가장 힘없이 무너진다. 사회적 안전망과 노동복지의 수준이 턱없이 낮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사회질서의 근본과 원칙으로 돌아가 보자. 노동은 인간 삶의 근본적 요소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스스로를 실현해낸다는 점에서 노동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활동이다. 노동절을 맞아 낸 경향신문의 특집기사에 따르면 ‘노동’이라는 말을 듣고 초등학생들이 떠올린 단어는 ‘힘든 일’이었고 심지어 ‘노예나 천민’을 떠올렸다고도 한다. 또 앉아서 일하는 마트의 계산원을 보고 “건방지다” “예의 없다”고 답했다. 자신을 실현해내는 가장 숭고한 인간 활동으로서의 ‘노동’이 아이들의 의식 속에 노예와 천민을 떠올리고 오직 근면과 복종만이 요구되는 일로 비친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아이들에게 내면화된 기형적 사회관이 아닐 수 없다. 분단체제 대한민국에서 노동은 한 번도 숭고한 가치인 적이 없었고 인간 삶의 가장 보편적 가치인 적도 없었다. 노동은 하지 말아야 하고, 노동자는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구조조정과 성과연봉제라는 쓰나미의 저 깊은 해저 진앙에는 한 번도 세상의 중심이 되어보지 못한 늘 위태롭고 배척된 노동이 있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시대의 중심에 흔들리는 노동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노동이 자본을 만들고 자본은 노동의 결실이라는 사실만은 변함없는 진리다. 그래서 인간노동이 삶의 근본이고, 노동하는 시민의 삶이 모든 질서의 중심이 되는 게 순리다.


이제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좀 바꾸자. 어떤 구조조정에도 노동자의 삶이 파괴되지 않는 질서, 성과주의의 이름으로 노동자의 존재양식을 파괴하지 않는 질서, 모든 이의 ‘삶’, 모든 노동자의 ‘삶’이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패러다임이 아이들의 교육에서 국가비전에 이르기까지 작동하도록 이제 근본적으로 좀 고민해 보자. 지난해 스웨덴의 전문직 노동조합(TCO)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킨다”고 하던 직원의 말이 천둥처럼 울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이 엄혹한 노동위기의 시대를 노동의 가치가 가장 인간적 가치이자 가장 미래적 가치로 재구성되는 기회로 만들 수는 없을까?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212036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