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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남주 - ‘협치’에 대한 이의

irene777 2016. 5. 26. 15:50



[이남주의 정치시평]


‘협치’에 대한 이의


- 경향신문  2016년 5월 16일 -





▲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지난주 대통령과 3당 원내대표·정책위원장 회담이 진행됐다. 정기적으로 회동하기로 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정부가 소통의 필요성을 들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문제점을 인정한 것은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회동 전후에 일제히 “협치”를 주요 화두로 삼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협치”에 대해 정치주체마다 부여하는 의미가 불분명한데도 이를 정국운영의 합의된 원칙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가 제자리를 찾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혼란을 증가시킬 것이다.


협치라는 용어는 외래어인 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로 종종 사용돼 왔다. 거버넌스는 모든 종류의 관리(governing)가 이루어지는 구조와 절차를 의미하고, 정부에 적용될 경우에는 통치를 의미한다. 다만 정책 결정과 실행에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권장한다는 함의를 갖기 때문에 통치보다는 공치 혹은 협치라는 번역어가 선호돼 왔다. 그렇지만 공치 혹은 협치가 거버넌스의 의미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그 사용에 있어 조심스럽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여야가 협치를 한다면 이는 연립정부, 거국내각 정도의 상황에 해당된다. 현재 정부·여당이 말하는 협치가 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야당이 이 같은 협치를 상정하고 있다면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는 격이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협치라는 말을 통해 마치 현재 상황을 야당과 함께 관리하며, 여기서 발생되는 문제도 야당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야당은 권한도 없이 책임만 뒤집어쓰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편의적으로 협치를 “타협의 정치”나 “협상의 정치”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제 길만 고집하며 정치적 불능을 초래해온 사태에 대해 국민의 불만이 많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방향처럼 보인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현 정권은 그동안 국정운영에서 대선공약 파기에서 시작해 주요 현안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있으면 이를 힘의 논리로 일축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타협과 협상의 정치가 작동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정부·여당의 책임을 묻고 국정운영 방식의 획기적 전환을 계속 요구해야 한다. 정부의 실정에 대한 비판이 총선에서 나타난 일차적 민의이다. 그런데 어느덧 민의의 핵심이 타협의 정치로 둔갑했다. 보수 언론들이 더 적극적으로 협치를 강조하고 나선 데는 이런 의도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정치의 역할을 협소화시킬 우려도 있다. 대화가 중요하지만 정치는 본래 시끄러운 것이다.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라, 당장 드러나지 않은 문제까지 끌어내 논의해야 하는 것이 정치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외되고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공론장으로 들어올 수 있겠는가?


그런데 협치라는 표현이 협력 통치를 의미하는가, 타협의 정치를 의미하는가와 관계없이 정치적 논쟁을 억누르는 도구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 이렇게 되면 총선을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민심과도 멀어지게 된다. 국민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고 기득권 유지에 연연하는 세력들끼리 지루한 싸움만을 일삼는 정치에 실망한 것이다. 여야가 적당히 타협하며 즐기라는 것이 민의는 아니다.


다수당이 정부를 구성하는 내각책임제와는 달리 대통령제하의 다수 야당의 처지는 원래 어렵다. 실제 권한은 없는데 책임은 공유해야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야당 본연의 역할과 다수당으로서 통치에 대한 책임을 나누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어렵다. 총선 승리가 정권교체에 유리하게만 작용하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대개 이에 근거한다. 현재 야당은 협치를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최소한 자신들이 생각하는 협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할 혹은 요구할 필요가 있다. 정부·여당과 언론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끌려가는 것은 문제해결을 위한 좋은 출발이 아니다. 듣기에 그럴듯하지만 내용은 불분명하거나 잘못된 ‘사이비’적 용어에 스스로 취할 일은 더욱 아니다.


타협과 투쟁 사이의 양자택일이 야당이 직면한 난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길은 아니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어떻게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정책에 반영하는가에 있다. 모든 사안에 대해 야당의 의지를 관철시키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야당으로서는 타협해야 할 사안과 아닌 사안을 구분해야 하지만, 국민의 요구가 높거나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분명한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적당한 절충에 기대어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면 국민의 마음을 잃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162055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