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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승환 -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에 기대어

irene777 2016. 5. 30. 18:31



[시론]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에 기대어


- 경향신문  2016년 5월 25일 -






▲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맨부커상이 무엇인지, 또 그 상을 받은 한강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언론이 호들갑을 떨어도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10여 년 전쯤 출간되어 매년 몇천권 정도 팔리던 책이 어느 날 갑자기 하루에만 2만권 이상 팔렸다는 소식에 또 그 고질적인 외국 숭배증이 도졌구나 생각했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뭐라고 떠들어도 별반 가치 있는 일이 없다는 학습된 냉소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 어찌 그의 수상작을 돌아보면서 이런 성급한 판단을 한 것을 후회했다. 이 작품은 확실히 우리의 본질적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결코 이 상에 부끄럽지 않은 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기회에 우리 문학과 인문학은 물론, 우리의 실존이 처한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동안 수많은 문학작품을 읽었으며, 능력이 부족하여 작가들을 감히 동경만 하던 내가 어느 순간, 아마도 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한국문학에 등을 돌렸다. 왜 그랬을까.


지금 우리 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으며, 가야 할 길을 잃고 허덕이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경제가 해체 직전에 이르렀다는 위협이 피부로 와 닿지만 위기의 근원은 그보다 훨씬 더 깊다. 지난 10년 이래 이 나라의 공적 영역에 부정과 불의, 사익이 흘러넘치는 현상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그런데 이 현상을 성찰하고 가야 할 곳을 향한 고뇌의 움직임을 찾아보기란 너무도 힘들다. 문학과 인문학적 학문이 죽어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사회와 우리의 현재는 너무도 어둡고 혼란스럽다. 그 안에 실존하는 우리도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경고는 흘러가는 말이 되고, 위기를 상품화하는 사이비들 때문에 이 모두는 진부한 일상이 되고 있다.


이 위기를 아프게 느끼는 사람들의 절박함은 과잉으로 치닫는 경제와 진영 논리에 빠져 너무도 식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삶과 존재의 위기가, 우리에게 닥친 근원적 위기는 감춰지고 그 자리에 현란한 거짓이 대신 자리하고 있다. 나는 정말 원한다. 이 작품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에라도 자극받아 이 위기와 이 절박함을 되돌아볼 수 있기를. 위기와 절박함이란 결코 진부함으로 빠져도 좋은 말이 아니다. 그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일상으로 매몰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너도나도 경제에, 자신의 안위에만 목매고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를, 자발적으로 그런 현실로 후퇴하는 삶을 되돌리지 않으면 우리는 곧 죽음과 같은 무의미로 빠져들게 된다. 거시적 차원에서 우리의 생활세계를 파괴하고 맹목으로 몰아가면서 자신들의 집단 사익만을 추구하는 이들이 온갖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미시적으로는 자신의 삶과 현재를 성찰하고 그 의미를 추구하는 절박한 과제를 내던진 채 이들이 만들어 놓은 가상현실에 휘둘리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 이를 되돌아보고 그 모순과 거짓, 그 맹목에서 벗어날 지성적 작업과 실천은 어디에 있는가. 한강은 이 상을 받은 뒤 행한 인터뷰에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금방 잊게 될 테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느냐”에 있다고 했단다. 옳은 말이다. 그가 쓸 글이 무엇일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우리의 절박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글이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그런 성찰을 담은 것이길 간절히 바란다. 아마 분명 그럴 것이다. 이 기회가 일년에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는 이 맹목의 사회에서 성찰이란 말이, 지성적 반성과 실천이 다만 일상의 허상을 감추는 거짓이 되는 이 현실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왜 한국의 인문학과 대학이 죽어가고, 왜 지성이 외면받으며, 왜 법이 조롱받고 언론이 기레기가 되고 있는가. 이 냉소와 이 맹목을 되돌리는 길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나의 사건에는 그 시대의 징표가 담겨 있다. 시대의 징표를 읽고 성찰하면서 그 위기를 넘어서는 시간이 지금 시작되길 간절히 바란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252048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