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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태훈 - 협치가 아니라 긴장관계 유지해야

irene777 2016. 6. 8. 13:40



[정동칼럼]


협치가 아니라 긴장관계 유지해야


- 경향신문  2016년 6월 2일 -





▲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대 국회가 개원했다. 이번엔 정말 달라야 한다. 무기력했던 19대는 잊어버려야 한다.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회에서 다수의 여당은 청와대 출장소에 불과했고, 소수의 야당은 야성을 잃고 끌려다니기만 했던 국회였다. 행정부와 사법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국회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 51.6%를 얻었으므로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에 따라 5년 내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한 박근혜 정부의 독단적인 국정운영에 제동을 걸지도 못하고, 테러방지법과 같은 악법을 정부가 원하는 대로 통과시키는 등 휘둘리기만 했다. 여당은 거수기처럼, 야당은 수적 열세만을 탓한 채.


총선 결과 여소야대라는 입법 권력의 지각변동이 일어나자 느닷없이 협치(協治)가 화두다. 여소야대라서 협치가 필요한 것은 아닐 텐데, 지난 총선 이후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만난 다음부터 매일 듣는 단어다. 왜 갑자기 협치일까. 의회 내에서의 여야 간 협력은 있을 수 있지만, 여야와 대통령이 협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과연 의회와 대통령 간의 협치라는 것이 가능하거나 바람직한 것일까.


통상적으로 협치는 민관 협치(Governance)의 의미로 쓰인다. 행정부 주도의 관치행정(Government)의 대칭개념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의사결정 과정이나 국정운영에 그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인 NGO나 NPO, 사기업, 주민들을 참여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정부와 국회가 서로 협조하는 것을 협치라고 부를 수는 없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때로는 협조하기도 하지만, 따져보고 질책하는 관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감시와 견제의 삼권분립 정신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회는 행정부 견제를 제대로 하려면 정부와 협치가 아니라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다수의 힘으로 대통령이 됐다고 5년 내내 표를 던진 그 다수만을 위해 정치하라는 것이 아니듯, 야당이 총선에서 다수당이 됐다고 4년 내내 국민의 다수가 야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민의는 변한다. 이슈에 따라 입법적 다수가 변하기도 한다. 여소야대를 만든 국민의 의사가 임기 내 불변인 것이 아니다. 여론이 선거를 통해 국회 구성에 반영됐지만 그 여론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움직이고 변한다. 그래서 정치권과 국회는 공론화된 여론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공론의 수용자로서 국회가 민의의 대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을 방치하거나 무시하면 이번 총선의 결과처럼 다수 여당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입 막고 눈 가리고 연필을 부러뜨리면 여론의 공론화가 차단되거나 왜곡된다. 공론장의 주체인 국민의 합리적인 공론 창출 과정을 지켜보고 이를 수용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 조작되거나 왜곡된 여론을 골라내고 공론화된 여론만 받아들여야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회가 입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법률은 국민의 의사이므로 입법권 행사도 국민의 최대한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 수적 다수를 점하고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 국회의원은 선거구민에 의해 선출됐지만 그 지역구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소속 정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기업의 편에서 그들을 대변하는 국가기관이 아니다.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임무는 집권 여당에도 주어진 것이다. 국회에서의 여야는 서로 대립하는 이익을 비교 교량하여 양자의 이익을 조화롭게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국회 내에서 여야 간 협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국회의원도 사람이니 망각한다. 선거 때만 국민의 뜻을 받들 것이라고 외쳐대다가 당선되면 잊는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곧 권력이라고 오해한다. 국가의 주인이 국회의원이고 국회의 주인이 국회의원이라고 착각하며 4년을 보내다가 선거가 돌아오면 국민의 곁으로 다가간다. 국민의 눈치를 살피고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나 계파 수장의 눈치를 보며 임기를 보내다가 잊고 살았던 국민을 다시 찾는다.


국회의원들은 금방 잊을지도 모른다. 의회권력의 지형이 왜 바뀌었는지, 왜 자신을 국민의 대표자로 뽑아주었는지를. 그러므로 끊임없이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유권자 곁에 있었던 선거운동 시절, 초조한 기다림 끝에 당선이 확정되었던 그때, 국민으로부터 받은 배지를 달았을 때, 개원 때 국민 앞에 선서했을 때 등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국회, 국회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국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년 동안 그 초심을 잊지 말고 민주주의를 지켜야 유권자는 그를 또다시 국회로 들여보낼 것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022053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