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집 나간 한국외교
- 경향신문 2016년 6월 9일 -
▲ 김준형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
박근혜 정부는 국내 정치가 죽을 쒀도 외교만은 잘한다는 평가를 꾸준히 받아왔다.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추측 가능한 몇 가지가 있긴 하다. 출범 초기, 친미 일변도로 주변 4강 외교에 최악이었던 전임 정부에 대한 반사이익이 있었고, 특히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는 대중국 외교의 가능성이 보였으며, 대북정책 유연화에 대한 기대 등도 있었다. 또한 패션외교와 더불어 잦은 순방외교에 의한 이미지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자화자찬과 함께 순방외교 직후 지지율이 반짝 상승해 온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하면 이 모든 이유들이 기만이거나 착시였음이 시간이 갈수록 드러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성과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한국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중국, 유럽은 물론이고, 멀리 아프리카도 가고, 쿠바에도 가는데 무슨 말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한국이 사라질 리는 없을 것이고, 외교 행위도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결정적인 국익이 걸려있는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정치의 중요 행위자를 두고 ‘이해상관자(stakeholder)’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한국이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이해상관자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 외교는 집을 나가서 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한국외교는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엉뚱한 곳에 가 있다.
한국 외교의 부재 현상은 작년 하반기부터 더욱 두드러졌다. 9월 중국의 전승절 참석으로 고양시킨 한·중관계를 곧 이은 방미에서 의미를 스스로 평가절하함으로써 대미 및 대중 레버리지를 가질 좋은 기회를 잃었다. 그럴 거라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왜 갔었던가? 결국 미국도 중국도 모두 기분 나쁘게 만들었고, 획득한 이익이 없다. 지난 12월 말에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우리는 대일 레버리지를 모두 잃어버린 데다 ‘불가역적’이라는 외교적 모욕까지 덮어써야 했다. 우리는 투명인간이었다.
2016년 들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돼 왔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한국은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모든 대북 채널을 단절시킴으로써 대북 레버리지도 함께 날아갔다. 유엔 제재 합의문에 민생은 건드리지 않고, 대화 재개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못 박고 있는데도, 한국정부는 이를 의도적으로 누락해버렸다. 북한이 개과천선하거나 붕괴하는, 그야말로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한국이 하고 있는 외교는 없다. 게다가 돈키호테처럼, 사드 배치로 중국을 공개 압박하면서 혼자만 돌격했는데, 미·중은 등 뒤에서 평화체제-비핵화 교환을 시도하기로 합의했다. 또 투명인간이 되었다.
7차 당대회 이후 리수용이 방중해 시진핑과 면담하고 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아프리카로, 외교장관은 쿠바로 날아가 소위 북한 고립(?)에 나섰다. 90% 이상의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중국은 외면하고, 북한의 기분만 상하게 할 정도의 영향력만 가진 국가들을 설득했음에도 엄청난 외교성과로 과대포장한다. 그마저도 설득당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가 들린다. 시진핑-리수용 회담 직후 미국이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국으로 지정하고, 중국기업 화웨이의 제재위반 조사에 나섰던 사실은 역으로 북·중간 모종의 합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감이 한국의 입에 떨어질 가능성은 더 작아지고, 한국의 대북제재는 결국 자해공갈로 전락한다.
오바마가 히로시마를 방문해서 미·일동맹의 클라이맥스를 찍을 때도 한국외교는 부재했다. 위안부 합의로 모든 것을 내준 한국은 이제 미·일에도 투명인간이다. 미·일이 서로 챙기면 될 뿐 한국에서 더 얻어낼 것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이 남중국해 문제에 관해 소극적이며, 사드 배치에 관해 주저한다고 몰아붙인다. 외교의 공적이 결실을 맺어 나타나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외교적 과실의 후유증도 시간지체가 있다. 그래서 더 무섭다. 지금 망가뜨리고 있는 훼손의 크기를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이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프랑스 순방 성과를 브리핑하면서 “이번 순방을 통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안보적·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길을 새로 만들고 넓힐 수 있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넓혔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전에 잘 방문하지 않은 국가를 가면 새로 만들고 넓힌 것인가? 그러는 동안 한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려있는 한반도와 동북아에는 정작 한국이 없다. 집 나간 한국외교는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까? 결국 1년 반이나 남은 세월 앞에 정권교체만 되뇌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좌절을 넘어 우리 잘못처럼 송구스럽기까지 하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092058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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