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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언론은 ‘우왕좌왕’ 박 대통령은 ‘딴청’…산으로 간 개헌 논쟁

irene777 2016. 7. 5. 18:20



<성한용의 정치막전막후 82>


언론은 ‘우왕좌왕’ 박 대통령은 ‘딴청’

산으로 간 개헌 논쟁


- 한겨레신문  2016년 7월 1일 -




언론 사설·칼럼에 기승하는 선동적 ‘반정치’ 프레임

개헌 논쟁 종식 위해 박 대통령 분명한 태도 취해야


20대 국회가 출범한 뒤 개헌이 정치 의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6월13일 20대 국회 전반기에 개헌을 하자고 공식 제의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이번 개헌론의 핵심은 개헌 그 자체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따라서 개헌론의 핵심은 권력구조일 수밖에 없습니다. 개헌 자체가 아니라, 어떤 개헌이냐가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권력구조에는 의원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4년 중임 대통령제 등 몇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권력구조를 선택하는 데는 ‘어떤 체제를 선택하는 것이 옳으냐’는 당위론도 중요하지만, ‘과연 어떤 체제로 개헌이 가능할 것이냐’라는 현실론도 중요합니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권력구조에 대한 정치적 합의,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개헌은 추진하기 어렵습니다.


개헌을 한다면 어느 쪽으로 합의가 가능할까요? 국회의원과 국민들의 다수는 미국처럼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제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력을 국회로 분산시키는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국회의원과 국민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내고 이른바 진박 공천을 받아 대구동갑 국회의원에 당선된 정종섭 의원은 지금 이원집정부제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9차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현재의 정치 지형으로 보면 내년 대통령 선거 이전에 개헌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특히 권력구조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하려면 여론의 흐름을 주시할 것입니다.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각 언론에서 활약하는 논객들입니다.


6월 들어 몇 신문의 개헌 관련 사설과 칼럼을 찾아 보았습니다. 신문들은 개헌의 절차와 시기, 권력구조에 대해 매우 다양한 논지의 사설이나 칼럼을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한 신문에서 정반대 주장을 싣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개헌 논쟁이 시작되면 반드시 국회와 국회의원들의 수준을 걸고 넘어지며 대통령제 유지나 개헌 반대를 주장하는 글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우리 언론과 논객들 가운데 일부는 반정치주의를 부추겨 반사이익을 취하는 기득권 세력에 편승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글이 그런 것에 해당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은 6월7일치 ‘분권형 개헌과 정계개편’이라는 칼럼을 통해 분권형 개헌과 정계개편을 제의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제안 이전에 나온 글입니다. 대통령제라는 제도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역량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고 이제 권력의 분산과 타협의 정치를 모색해보자는 의견입니다.


“현명한 영도자가 없다는 사람의 문제가 있지만 대통령제의 효율성도 이제 한계에 왔다. 권력의 집중화가 문제다. 그나마 그 권력은 무슨 친(親)자 돌림의 형태로 개인 숭배화돼 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 얽히고 인적으로 줄 세운 권력은 당연히 패권화되게 돼 있다. 이것이 정치의 비타협과 극한 대립을 불러오고, 거기에 이념적 색채까지 입혀져 국민적 갈등과 대결을 조장해왔다.”


“이제 분권형 개헌을 검토할 때다. 제도를 바꾼다고 우리의 정치가 곧 생산적이고 안정적으로 바뀐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한 지도자가 사회의 다양한 요소를 모두 섭렵하기 어려운 복합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제 정치의 방식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또 당장 걸출한 영도자를 기대하기보다는 권력의 분산과 타협의 정치로 많은 '지망생'들을 수용하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정작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헌 제의가 나오자 <조선일보>는 6월15일치 ‘개헌, 충분한 시간 갖고 차분하게 논의해야’라는 사설에서 갑자기 신중론을 폈습니다.


“개헌은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국민 기본권 확충과 복지·환경 등 보완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권력 구조 문제를 포함해 국민과 이런 내용을 공유하는 과정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지금 이 나라에 큰 변화가 필요하고 개헌 논의가 그 시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문제의식은 살려나가되 시한 정해놓고 밀어붙이듯 개헌을 논의할 일은 아니다. 개헌은 충분히 시간을 갖고 국민의 폭넓은 동의를 얻어 천천히 결정해나가야 한다.”


천천히 하자는 얘기는 지금 당장 하지 말자는 얘기와 같은 것입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 제안에 대한 6월22일치 사설 ‘개헌특위, 국회만이 아닌 범국민적기구로 만들어야’라는 글도 신중론입니다.


“그러자면 개헌을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다양한 국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운데 범국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간적 여유도 충분히 둬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정치인들의 전유물처럼 진행되면 정작 개헌에 이르지도 못하고 아까운 기회만 낭비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특히 다음 대선에서 권력을 쥐려는 사람들의 흥정과 거래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강천석 논설고문은 6월25일치 ‘헌법은 연주자 실력 따라 다른 소리 내’라는 칼럼에서 사실상 개헌 반대론에 가까운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현행 헌법 속 국무총리는 연주자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멋진 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국무총리 소리를 들어봤다는 사람이 없다. 입을 달아주지 않았으니 총리 탓을 할 수도 없다. 대통령이 악보(樂譜)대로 헌법을 연주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연주자가 악보의 지시와 달리 연주하면 악기를 바꿔봐야 소용이 없다. 개헌 논의의 초점을 일단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헌법대로 헌법을 운용하도록 하느냐에 맞춰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게 드러나면 악기를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자연히 힘이 실리게 될 것이다.”


한 달 사이에 적극적인 분권형 개헌 추진론에서 사실상 개헌 반대론까지 다양한 의견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앙일보>는 6월14일치 사설 ‘정세균 의장의 개헌론에 주목하는 이유’를 실었습니다.


“현 정부의 임기 중 개헌 논의의 골든타임이 있다면 정기국회가 끝나는 올해 말일 수 있다. 대선 예비주자들이 이 문제를 던져놓고 공론의 장을 만들거나 아예 집권 공약으로 내거는 것도 방법이다.”


이 정도면 적극적인 개헌 찬성론입니다. 그러나 장훈 중앙대 교수는 6월20일치 ‘중앙시평’ ‘개헌론, 그 깊은 괴리감에 대하여’라는 글을 통해 개헌 반대론을 전개했습니다.


“시민들이 겪는 삶의 위기와 여의도 정치권에서 말하는 위기의 괴리가 좁혀지지 않을 때 위기는 거대한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이나 서유럽 극우정치의 약진은 시민적 삶과 유리된 대의제 정치가 쏟아내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다. 고장 난 대의제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우리 정치는 시민들 삶의 위기와 정치권이 말하는 위기의 괴리부터 좁혀야 한다. 개헌은 그다음 일이다.”


김진 논설위원도 6월22일치 ‘중앙시평’ ‘개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4개’라는 글로 개헌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개헌은 ‘이혼+재혼’과 같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런 선택을 할 때 중요한 건 새 길이 훨씬 나을 거라는 확신이다. 그런 확신 없이 개헌하는 건 국가의 미래가 매우 위험하다. 국가는 실험실의 생쥐가 아니다.”


박보균 대기자의 6월23일치 ‘특권국회 개헌론, 가망없는 게임’이라는 글도 개헌 반대론입니다.


“국회의 개헌 논의는 필요하다. 추진력은 내부에서 생산해야 한다. 달라진 국회의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출발은 의원 특권의 폐기다. 정 의장은 ‘면책(免責)과 불체포 특권’ 포기를 역설했다. 특권 내려놓기가 개헌의 진정성 확보 조건이다.”


그러나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6월24일치 ‘중앙시평’ ‘헌법개혁이 왜 절실한 민생개혁인가’라는 글을 통해 지금 개헌이 왜 필요한지 독자들을 설득하려 애썼습니다.


“절대권력과 관료와 기업의 전횡을 금지하는 것이 민생개혁의 첩경이다.”


“권력과 자원을 분산할 헌법개혁 없는 민생개혁과 민생증진은 불가능하다.”


한 신문에서 매우 강한 개헌 찬성론과 매우 강한 개헌 반대론을 번갈아 내놓고 있는 것입니다.


<동아일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아일보>는 6월14일치 사설 ‘20대 국회, 87년 체제 바꿀 개헌논의 시작해보라’에서 국회의 개헌 논의에 찬성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한 바 있다. 임기후반 대통령의 개헌 추진은 ‘권력연장 의도’라는 의심을 살 수 있는만큼 20대 국회 주도로 개헌의 큰 그림을 논의해 볼만하다.”


박제균 논설위원도 6월16일치 칼럼 ‘박 대통령이 역사에 죄를 짓지 않으려면’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개헌 찬성론을 폈습니다. ‘지금이 개헌 골든타임’, ‘“추진반대 안해” 표명해야’라는 작은 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6월20일치 시론 ‘개헌을 위한 몇 가지 기준’에서 국회, 국회의원, 정당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당장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그 성공조건, 즉 국회와 국회의원들에 대한 신뢰, 정당에 대한 신뢰를 더 높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송평인 논설위원은 6월29일 칼럼 ‘국회 주도의 개헌에 반대한다’에서 6월14일치 사설과 정반대의 주장을 들고 나왔습니다.


“국회에서 나오는 개헌 얘기는 내각제란 말이 앞에 붙어있지 않아도 내각제 개헌으로 새겨들어야 한다. 87년 헌법으로 최대 기득권 집단이 되고, 2012년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여야가 기득권을 나눠 갖는 시스템까지 만들어 놓은 국회는 대통령령 수정권, 수시청문회 개최권 등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권한 강화를 추진해왔다. 내각제 개헌 추진은 이참에 국회가 아예 대통령을 해먹겠다는 것이다.”


“국회가 움직이면 대통령도 움직여야 한다. 대통령은 나라의 현자(賢者)들을 모아 독립된 기구를 만들어 헌법 개정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협치(協治)라는 번드르르한 포장재로 내각제로 가는 길을 닦고 있는 국회에 개헌의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 국회는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바꾸는 대(大)변화를 감당할 전문성도 없는 데다 국회의 저열한 지적 수준과 책임 의식, 특권 집착과 갑질 관행을 고려하면 내각제는 우리나라에는 국가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국회에서 개헌 논의를 해 보라는 것과 국회 개헌 논의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동아일보>의 의견일까요?


<경향신문>은 6월16일치 사설에서 개헌에 반대했습니다. 제목부터 ‘시민은 살아남기도 힘겨운데 국회는 개헌이 우선인가’입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도 6월28일치에 ‘지금이 개헌 논의를 할 때인가’라는 칼럼을 실었습니다. 확실한 반대 의견입니다.


“개헌이 필요하다면 절차에 따라 진행할 수 있다. 내년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거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 국민은 개헌을 가장 중요한 정치과제로 보고 있지 않으며,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 내에서도 생각이 모두 다르다. 권력구조 문제만 해도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 양립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들이 제각각 등장하고 있다. 위기 대응과는 별 관계도 없다. 개헌을 놓고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의미 없는 정쟁만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한겨레>는 어떻게 썼을까요? 6월17일 ‘개헌의 전제 조건과 원칙들’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보냈습니다. 개헌을 위해서는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고, 권력구조 개편 차원을 넘어서야 하며, 실질적 분권 및 상호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하고, 정략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네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동안 <한겨레> 칼럼과 사설에서는 개헌에 대해 특별히 강한 찬성론이나 반대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개헌을 당위론보다 현실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개헌이 추진되려면 박근혜 대통령이 적극 나서야 합니다. 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개헌 찬성 의견을 밝혀야 합니다. 권력구조에 대해서도 주요 정치인들이 각자 확실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절충을 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개헌 논의에 탄력이 붙을 수 있을 것입니다.




▲ 국회사진기자단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개헌이 현실적으로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반정치 프레임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정치인들이 권력을 어떻게 나눠먹을지 궁리만 한다’거나 ‘이런 수준의 국회와 국회의원들에게 권력을 넘길 수 있느냐’는 주장을 넘어서기가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반론을 정확히 내놓고 있는 사람은 제가 보기에 박명림 교수뿐입니다. 앞서 소개한 <중앙일보> 칼럼에서 박명림 교수는 이렇게 썼습니다.


“한국처럼 절차적·제도적 민주주의가 ‘권력의 제왕적 초집중’ ‘자원배분 권한의 독점’ 상태에서는, 실질적 민주주의는커녕 지속적 성장조차 불가능하다.”


“방대한 국제비교연구들은 의회책임제가 대통령책임제보다, 비례대표제가 다수대표제보다, 연합정부가 단독정부보다, 지방자치국가가 중앙집중국가보다, 인구대비 대(大)의회국가가 소(小)의회국가보다, 다당제가 양당제보다 자유·평등·복지·형평·중산층 규모·공공성·안정성·정책지속성에서 뚜렷한 비교우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과는 모든 면이 정반대다. 즉 선진국이기 때문에 권력분산·의회책임·지방자치·비례대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회책임·권력분산·지방자치·비례대표를 실시했기 때문에 선진 민주국가·복지국가·안정국가가 된 것이다.”


매우 설득력 있는 논지입니다. 하지만 선동적인 반정치 프레임을 넘어서기에는 힘이 달려 보입니다. 개헌 논쟁,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 한겨레신문  성한용 선임기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503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