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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민희 - 동물농장과 멸종사회

irene777 2016. 7. 16. 00:53



<편집국에서>


동물농장과 멸종사회


- 한겨레신문  2016년 7월 13일 -





▲ 박민희

한겨레신문  문화스포츠 에디터



그렇다. 우리 모두는 동물농장에 살고 있었다.


절대권력자가 된 돼지 나폴레옹의 횡포, 아첨과 침묵 속에서 부패해가는 권력,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 대중이 권력의 횡포에 저항하지 않을 때 어느덧 전체주의가 똬리를 트는 모습을 그린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이 지금 우리 현실이다. “국민의 99%는 개돼지”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말한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대한민국 기득권층의 속내를 폭로한 내부고발자다.


<부산행>을 만든 연상호 감독이 2011년 내놓은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에 등장하는 중학교는 개와 돼지 무리가 맞서는 피비린내 나는 공간이다. 부잣집에, 공부 잘하고, 덩치도 큰 아이들은 개의 무리다. 돼지 무리는 가난한 집의 공부도 못하고 덩치도 작은 아이들이다. 교사들의 무관심 속에 개들로부터 온갖 괴롭힘을 당하며 지옥에서 살아간다. 폭력과 괴롭힘이 난무하는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돼지들 가운데서도, 세상을 향한 원망과 독기만으로 강자들에게 복수하려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충격적이고 피범벅인 ‘복수’를 감행하지만, 현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끔찍한가. 현실의 절망감은 훨씬 깊고 지속적이다. 무한반복 경쟁에 내몰려 발버둥쳐봐도 소수의 승자와 다수 낙오자로 나뉘는 아이들, 부유층에게만 유리해지는 대학입시, 돈과 빽 있는 집 출신에게만 유리한 로스쿨, 수없이 자소서를 쓰고 스펙을 쌓고 열정페이를 감수해도 ‘정규직의 꿈’을 이루기 힘든 청년들…. 그리하여 하나의 집단적 저항이 등장했다. “저출산은 ×같은 국가에 대한 서민층의 저항이다. 특권층끼리 많이 낳아서 잘 살아봐라.” 이제 저출산에 대한 정부 대책이나 기사는 지겨울 정도지만, 며칠 전 그런저런 기사에 달린 이 댓글에선 마음이 덜컹 멈췄다. 저출산만이 저항수단이 된 한국 사회는 구성원 다수가 소멸을 ‘선택’한 멸종사회다.


1 대 99의 신분제 사회에서 더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절망이 99%의 가슴을 짓누르는 지금, 좀더 공정한 분배가 해법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많은 나라에서 변화는 시작됐다. 미국 샌더스의 정치혁명, 미국 민주당이 정강정책 초안에 연방 최저임금을 7.25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하기로 한 것,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가 그 신호다. 내심 한국에선 ‘최저임금 1만원’이 그 전환점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전체 임금노동자 5명 중 1명, 342만명의 생계가 걸린 최저임금을 6030원에서 1만원으로 올려달라는 노동계의 요구는 어느 때보다 절박했다.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위에 올라가 최저임금 1만원 시위를 벌이다 연행된 알바노조의 박정훈 위원장은 이렇게 외쳤다. “대통령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결정하면서 국민의 생존권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인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던 대통령이 미국의 전략적 무기를 생존권이라 말합니다. (…) 대통령님 우리가 개돼지라서 최저임금 만원이 아깝습니까?”


12일 밤 정부가 임명한 ‘대리인’ 격인 공익위원들은 내년도 최저임금이 6838원을 넘을 수 없도록 한 안을 제시했다.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막말 중 ‘구의역 김군이 내 자식 같다고 하는 건 위선’이라는 말은 섬뜩했다. 고통에 공감하려는 이들에 대한 비웃음이 확 끼쳐왔다. 그가 인용한 영화 <내부자들>의 원래 대사는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이다. 구의역 김군의 죽음 앞에서 외주화와 비정규직, 청년의 비극을 잊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을 잊으면 우리는 정말 개돼지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멸종하거나.



- 한겨레신문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21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