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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갑우 - 브렉시트라는 유령

irene777 2016. 7. 20. 19:02



[정동칼럼]


브렉시트라는 유령


- 경향신문  2016년 7월 17일 -





▲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 (정치학)



2016년 6월23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영국인들은 52 대 48로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했다. 브렉시트가 3차대전의 촉매가 될 수도 있다는 최악의 경고까지 동원되었음에도, 다수는 브렉시트의 길을 갔다. 그 길이 불길의 입구인지의 여부는 상관이 없는 듯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모국이자 제국주의 원조인 영국의 국내정치적 결정이, 이른바 중산층이라는 국제적 신화의 재생산을 통해 지탱하고자 했던 2차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근본적 전환을 야기한 두 번째 사건이 브렉시트다.


첫 번째 사건은, 1979년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총리의 등장이었다.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끔 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이념의 전 지구적 확산을 초래한 정치적 발화의 순간이었다. 2차대전 이후 고정환율제를 지탱하던 국제통화질서는 1970년대부터 붕괴하고 있었다. 이 붕괴로, 이 질서의 창출자 가운데 하나인 과거 패권국가 영국이 1976년 9월 노동당 정부 하에서 외환위기를 겪을 정도였다. 대처 정부는 탈규제, 민영화, 자유화를 기치로, 금융자본 중심의 성장전략을 정당화했다.


2008년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미국발 경기침체는 영국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종언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 이후 다시금 국가의 시장개입을 정당화하는 세계질서가 출현하면서, 보호무역과 환율전쟁이라는 1930년대 대공황의 전야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브렉시트는 경제위기와 함께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영국식의 지체된 정치적 대응이었다.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탄생시킨 영국에서 그 질서를 부정해야 한다는 절망이 영국이 회원국가인 지역통합체 유럽연합에 대한 반감으로 표현된 것이다.


영국은 2차대전 이후 서유럽지역에서 진행된 미국 주도의 군사적 협력의 산물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는 가입했지만, 서유럽통합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영국은 1973년 유럽공동체에 가입했고, 1975년 노동당 정부하에서 유럽공동체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를 하기도 했다. 국민국가적 정체성을 보수(保守)해야 하는 보수당이 있을 정도로 영국은 주권을 초국가기구로 이전하는 것을 주저했다. 1999년 1월 유럽단일통화가 도입되고 유로존이 형성되었을 때도 영국은 유럽연합 회원국가이면서도 자국의 파운드화를 유지하면서 유로존의 밖에 있고자 했다. 영국은 유럽연합의 “어색한 파트너”였다. 2009년 12월에 발효된 유럽연합의 리스본조약은 ‘유럽헌법’을 만들려는 시도의 실패가 만든 부산물이었다. 유럽연합은 공동 외교안보정책을 넘어 국방정책의 통합까지 나아가고자 했다.


영국의 국내 정치에서 브렉시트가 다시금 의제로 설정된 결정적 계기는 2015년 5월의 두 선거였다. 2015년 5월7일 총선에서 보수당이 다수를 획득했다. 그러나 5월 중하순의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영국독립당이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체제를 붕괴시켰다. 초국가적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브렉시트를 주창하는 영국독립당이 승리하는 소극이었다. 브렉시트를 국민투표 방식으로 의제화하면서, 미국 일방주의와 이에 편승한 영국의 이라크 침공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인 중동 난민의 유럽연합 유입이 촉발한 반(反)이민정서와 그 정서의 극단인 인종주의가 브렉시트 찬성을 이끈, 또는 브렉시트 반대파가 구성하고자 했던, 담론이 만들어졌다. 이 인종주의의 대외적 표현이 유럽연합과 같은 초국가적 기구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고립주의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종주의와 고립주의라는 유사 파시즘과 같은 정치적 이념이 정치무대에 등장한 원인을 천착할 필요가 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찬성으로 이끈 변수로 계급, 연령, 교육, 지역 등이 언급되고 있다. 저소득층, 고령층, 저교육층 그리고 후진적 지역에 거주하는 다수가 브렉시트에 찬성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영국 정부의 긴축정책은 계급격차를 견고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계급전쟁’으로 묘사하기까지 한다. 기득권층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브렉시트를 이끈 동력이었다. 브렉시트를 위한 국민투표의 승자는 경제적 약자이고, 패자는 경제적 강자였다. 브렉시트는 여진처럼 생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슬픈 혁명’이다. 브렉시트란 유령에게 투표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약자는 ‘계급전쟁’을 수행했다.


그러나 브렉시트는 그 미래의 불확실성만큼이나 텅 비어 있는, 유령의 기표다. 사회적 약자의 실존적 불안을 공허한 이념으로 채우는 작금의 현실을 바꾸려는 고투를, 누가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72035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