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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명섭 - 사드 카타스트로피

irene777 2016. 7. 23. 13:55



<아침 햇발>


사드 카타스트로피


- 한겨레신문  2016년 7월 19일 -





▲ 고명섭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미국 국제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저작 <거대한 체스판>을 다시 들여다보자. ‘거대한 체스판’은 서쪽 끝 리스본에서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을 가리킨다. 이 체스판을 어떻게 미국의 뜻대로 운용할 것인지가 이 책의 관심사다. 브레진스키는 한국을 “극동의 작은 반도 반쪽”이라고 부르며 미국이라는 독수리가 내려앉을 수 있는 ‘횃대’라고 묘사한다. 이 횃대 곧 한국은 유라시아 전략게임에서 미국이 최대 동맹국 일본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데 거점 노릇을 한다.


눈여겨볼 것은 브레진스키의 책에서 북한에 대한 언급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브레진스키의 눈에 북한은 중국의 한 종속변수일 뿐이다. 이 냉정한 전략가는 한반도의 통일 문제도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한낱 변수로만 취급한다. 통일이 한민족의 숙원이라는 사실은 안중에 없다. 브레진스키는 통일된 한국에 미군이 계속 주둔할 경우 중국이 주한미군을 중국 위협용이라고 인식하지 않겠는가 하고 걱정한다. 그러므로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보다는 분단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에 더 유리하다는 것이 브레진스키의 판단이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관심과 통일을 바라는 한국의 관심이 일치하지 않음이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미국의 이런 생각은 그대로 관철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한 뒤 한국과 미국은 국제사회를 끌어들여 봉쇄적 제재를 가했다. 미국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제재 명단에 올리는 극히 이례적인 압박전술까지 썼다. 그런데 그 제재 명단을 발표하고 이틀 만에 사드 배치 결정이 발표됐다. 사드 배치가 중국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 명백하고, 중국과 북한을 다시 결속시켜 대북 제재를 허물어뜨리리라는 것 또한 명백한데도, 미국은 배치 결정을 강행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분명하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은 미국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 핵 문제를 빌미로 삼아 위기감을 한껏 끌어올린 뒤, 사드 배치로 중국을 포위한다는 최대 관심사를 실행하는 데 활용했을 뿐이다. 북한 핵 문제를 중국의 협조 속에 풀어보겠다던 한국만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미국은 사드 배치 결정을 얻어냄으로써 중대한 전략적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브레진스키는 중국은 관리하고 견제할 대상이며, 할 수 있다면 동맹으로 끌어들여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최악의 경우는 중국과 러시아가 반미 동맹을 맺는 것이다. 사드 배치 결정은 그 최악의 상황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몰아붙이고 있다. 중국과 미국 사이 전략적 균형이 흔들림으로써 동북아시아는 군비경쟁의 화약고가 될 상황에 처했고, 한반도는 그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 중국을 적으로 모는 것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세계의 안전을 흔든다.


박근혜 정부가 할 일은 미국을 설득해 사드의 한국 배치가 북한 핵 문제를 원점으로 돌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분노를 불러옴으로써 결국엔 미국의 국익에도 해가 된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정부는 이 중대한 문제를 놓고 갈팡질팡하다 미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임으로써 한반도를 더 큰 위기로 몰아넣었다. 남은 것은 중국의 보이지 않는 경제 보복과 중국인들 사이에 일어날 반한 감정, 그리고 우리 내부의 극심한 갈등과 혼란이다. 사드가 일으킨 재앙, 사드 카타스트로피다.



- 한겨레신문  고명섭 논설위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30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