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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류웅재 - 공영방송의 위기, 사회의 위기

irene777 2016. 7. 28. 17:05



[시론]


공영방송의 위기, 사회의 위기


- 경향신문  2016년 7월 21일 -





▲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최근 경제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미디어의 위기라는 말이 도처에서 들려와, 이제 위기라는 말이 전혀 새롭지 않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은 이에 대한 내성이 생긴 듯하다.


유사한 문맥에서 ‘창조’, ‘융합’, ‘혁신’ 따위의 언어들 또한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정치적 의도나 경제적 욕망 외에 이들이 지칭하는 의미가 광범위한 사회적 이해를 획득하고, 일상의 구체적인 쓸모로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다만 우리가 언어와 사물의 관계를 정립하고 그 조응의 정도를 엄밀하게 해 현실에서 유용성을 최적화하는 일은 삶과 사회의 지속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런 문맥에서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한국 언론, 구체적으로 공영방송의 공공성 상실을 둘러싼 파열음과 이에서 파생되는 ‘위기’는 단순히 저널리즘에서 다루어지는 언론의 기능과 공공성에 관한 학술적 논의나 언론인의 직업윤리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는 무엇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불안정성과 불의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는 전조이다. 그렇기에 이는 언론의 자기 성찰과 쇄신, 자구 노력과 더불어 넓은 사회적 공론에 기반을 둔 정책적 개입과 시민적 차원에서 지혜와 용기를 모아 숙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사안이다.


이달 초 언론을 통해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세월호 관련 기사를 수정하려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두고 청와대는 통상적인 업무라 반박했지만 야당은 과거 권위적 군사정권 시절에나 존재했던 뉴스 관련 ‘보도지침’이라 비판했고 많은 시민들의 견해 또한 이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논란을 일으킨 이정현 의원은 “오보를 바로잡으려고 언론사에 협조를 구한 것”이라 했고, 곧이어 새누리당의 당권 도전을 선언하며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꾸겠다고 말했다. 또 최근 성주의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거세고 군사적인 대응까지 언급되고 있다는 객관적 상황과 상식적 수준의 논평을 한 KBS의 해설위원이 보도본부 밖으로 내보내지는 인사 조치를 당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하의 문화공보부는 언론 통제를 위해 특정사안의 보도 여부와 방향, 심지어 기사의 크기까지 정했다. 이번에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은 30년 전과는 정도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회유와 협박, 욕설 등을 통한 언론 통제가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는 방송 내용과 편성에 개입을 못하게 되어 있다는 현행 방송법에 배치될 뿐 아니라, 이러한 외압이 기자들의 자기 검열로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 이의 해소를 위해, 공영방송사 내부의 인사권을 쥔 사장의 정치적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는 공영방송의 자율성과 보도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정부와 여당이 사장을 선임하는 현재의 공영방송의 인사 제도 개선과 지배 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또한 공영방송에 정권의 관여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구조와 공영방송 운영의 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회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거대한 전환의 과정에서 사회적인 것을 불확실하고 과거의 기준으로 논의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는 동시에 우리가 보다 나은 사회와 공동체를 꿈꾸기 위해 포기하지 말아야 할 무엇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기술적인 행정이나 서비스가 아닌 정치, 즉 사회와 공동체, 공공성과 민주주의라는 언어들이 대학의 강단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우리 삶의 구체에 불을 밝힐 수 있는 역능들로서, 이들을 위한 정치의 복원이다. 이는 지난번 총선에서 목도했듯 시민으로서 우리의 지속적 관심과 실천만이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12117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