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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태일 - “아니, 이렇게 가까운 곳이었어?”

irene777 2016. 7. 30. 15:53



[김태일의 정치시평]


“아니, 이렇게 가까운 곳이었어?”


- 경향신문  2016년 7월 25일 -





▲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일요일 아침, 달콤한 늦잠을 깨운 전화가 왔다. 대구 북구을에 지역구를 둔 무소속 홍의락 의원이다. “성주 가 볼래?” 진작 가보고 싶었지만 ‘외부세력’으로 찍힐까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던 나는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샌들에 반바지 차림으로 친구를 따라나섰다. 성주 사람들이 저렇게 절박한 목소리로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는 이유를 듣고 싶었다.


성주는 대구에서 가까운 곳이다. 우리가 탄 차는 곧 사드 배치 예정지인 ‘성산포대’에 도착했다. 이미 중요한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는 터라 경찰과 군이 지키고 있는 바리케이드 세 개를 지나서야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산 아래를 내려다보던 우리 일행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말이다. “아니, 이렇게 가까운 곳이었어?” 우리는 이곳을 사드 배치 최적지라고 결정한 사람들이 과연 현장을 와 봤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성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시가지가 사드 배치 장소의 ‘발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 곳 사이의 거리가 지도상으로는 1.5㎞ 정도라고 하는데 느낌으로는 지척이었다. ‘정서적’ 거리는 더 가까웠다. 사드를 배치할 것이라고 한 그 산은 성주 젊은이들이 계곡에서 가재를 잡고 놀던 뒷산이었다. 산 정상에서 돌을 던지면 데굴데굴 굴러가 닿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의 거리’에 성주 시가지가 있었다. ‘사드 전자파를 머리에 이고 살란 말이냐?’라는 성주 사람들의 호소는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성산포대’를 내려와 성주 군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 성주 사람들은 자신들의 머리에 이고 살지도 모를 사드의 전자파가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칠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사드 전자파 앞에 서서 그것이 유해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에 성주 사람들은 실소를 넘어 분노하고 있다. 저것이 정녕 우리의 국가란 말인가? 군청 마당에서 만난 한 시민은 “그걸 무해 입증이라고 말하다니 우리를 능멸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해롭지 않다면 지들 집 앞에 사드를 가져다 놓고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전자파를 쏘이라고 하라지.” 참을 수 없는 노여움으로 시민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였다.


성주 사람들은 정부의 이런 태도가 ‘성주를 만만하게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한다. 성주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영이 있는 곳이며,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게 86%의 몰표를 보낸 곳이어서 정부가 이처럼 무리하게 밀어붙여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 판단을 바탕으로 성주에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그 점에 대해 성주 사람들은 격분하고 있다. 성주군의회의 한 의원은 ‘믿고 지지했던 사람한테 뒤통수를 맞았다’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저는 지금까지 ‘박근혜’라는 소리만 들어도 눈물을 흘린 사람입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머리를 깎고 띠를 두른 성주군의회 백철현 의원의 말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신주처럼 모시던 어느 마을 할머니들이 벽에 붙여놓았던 박 대통령의 사진을 내려버렸다는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덧붙였다. 성주 사람들은 ‘설명 준비도, 경호 준비도 없이’ 불쑥 성주를 찾아와 ‘상주시민 여러분’이라고 잠꼬대를 한 황교안 국무총리나 한민구 국방장관을 ‘과격행동 유발자’로 규정하고 있었다. 정부와 신문·방송들이 성주 사람들을 고립시키려는 계략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주 사람들의 걱정처럼 정부와 일부 언론은 성주를 외부세계와 차단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것 같다. 지역이기주의, 외부세력의 개입, 폭력, 색깔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성주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분노하면서도 의연하게 받아넘기려고 하는 것 같다. 오히려 그들을 조용히 꾸짖고 있다. 성주의 어머니들이 만든 파란 평화의 나비들이 성주를 넘어 훨훨 날갯짓하고 있다. 성주 사람에게 가장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고 물었다. “우리의 저항은 사드가 성주에만 들어오지 않으면 된다고 하는 지역이기주의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우리의 주장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사드는 필요 없다’ 입니다.” 어떤 외부세력의 주장이 아니라 평생 1번을 찍으면서 성주에서 살고 있는 머리 하얀 어른의 조용하지만 단호한 말이다. 별 성(星), 고을 주(州). ‘별 터’라는 고운 이름으로도 불리는 성주의 사드 배치 반대운동은 평화운동으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일요일 저녁 7시 군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52113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