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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병철 - ‘균형 외교’ 접고 ARF 무대 오른 정부

irene777 2016. 7. 30. 14:55



[시론]


‘균형 외교’ 접고 ARF 무대 오른 정부


- 경향신문  2016년 7월 25일 -





▲ 이병철 

평화협력원 핵비확산센터 소장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6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개최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앞두고 24일 열린 한·중 양자 외무장관 심야회담 분위기를 전하는 언론의 보도가 불길하다.


과거 미국과 소련이 냉전을 형성했던 것처럼 미·중 간 신냉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한반도를 서서히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에게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편이냐를 묻는 질문지가 미국으로부터 던져졌다. 양쪽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한 채 선로 한가운데에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게 됐다.


사드 배치 결정을 내린 박근혜 정권은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을 선택함으로써 미국에 편승하는 순응전략을 취했다. 어느 일방의 국가에 들러붙지 않으면서 최대한 균형외교를 취해온 것을 사실상 포기하는, 이른바 ‘테플론(Teflon) 외교’의 종언을 선언했다. 박근혜 정권으로서는 중국보다 미국과의 짝짓기가 대한민국 국익에 더 큰 이익을 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이념가치를 토대로 맺은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의 충돌은 이제 시점만 남겨두고 있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긴급현안 답변을 통해 “중국 군부가 뭐라고 얘기하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는 국방 최고책임자가 중국의 잠재적 능력과 부상 속도를 과소평가하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동시에 한국 고위 정책결정자들의 대미 편중성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중국이 군사 분야에서는 미국에 뒤처져 있지만 미국의 ‘예산 감축’ 요인을 고려할 때, 중국의 방위비가 늦어도 2032년에는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위성요격 성공(2007)에 이어 스텔스전투기 시험비행을 성공(2011)한 것과 대함탄도미사일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국가가 중국이다. 물론 중국의 거침없는 성장에 반론도 없지 않지만, 군사력에서도 중국의 기술적 비약 추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미국이 의도했든 아니든 한반도 내 사드 배치 결정으로 중국의 대응은 이전의 미·중 간 조화로운 관계 유지에서 공세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북핵 억지를 빌미로 사드를 내세워 동북아에서 ‘현상 변경’을 시도하려 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불원간 중국의 ‘전략적 겸허’의 모습은 사라지고, 소원했던 북·중 관계 역시 복원될 것이다.


미·중 관계의 변화는 한국의 국익에 곧바로 투사돼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미국의 중요 현안부터 한국의 줄서기를 강요하는 워싱턴의 압력 강도는 점차 높아질 것이다. 보수정권하에서 한·미동맹의 위계적 질서가 더욱 심화되는 셈이다. 또한 2004년 고구려사 논쟁 이후 형성된 한·중 간 상호 부정적 인식은 서서히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이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호기 어린 주장은 수정돼야 마땅하다.


불확실한 역내 상황과 미래를 조망해 볼 때 깨어있는 백성이라면 정책 결정자들이 정권과 상관없이 국가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치밀한 전략과 혜안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어봐야 한다. 여기에는 출중한 외교 감각과 폭넓은 전략적 사고를 지니고 있어야 함에도 대통령과 주변 보좌진들이 그러한 자질을 갖춘 인물들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 외에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부디 제시해 주셨으면 한다”는 과녁을 벗어난 주장이 아니라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서 보았듯이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을 지지할 의도가 없기에 미국이 아니면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로 물었어야 옳았다. 기왕 테플론 외교를 끝내려면 그래야 맞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52113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