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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태훈 - 대통령의 언어

irene777 2016. 8. 3. 02:30



[정동칼럼]


대통령의 언어


- 경향신문  2016년 7월 28일 -





▲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배치 반대를 ‘불필요’한 논쟁으로 단정지었다. 국민을 향해 대결하듯 어디 대안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재갈을 물리려는 듯한 표현도 썼다. 반대세력을 ‘불순’세력이라고 했다. 불필요한 논쟁을 하다보면 대한민국이 사라질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역사교과서와 관련해서는 혼이 ‘비정상’이라는 표현도 썼다. 아니 ‘불(不)’, 아닐 ‘비(非)’투성이다. 국민을 편 가르는 언어사용이다. 총선 전에는 자기편을 진실한 사람 대 진실하지 않은 사람으로 갈라놓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단순 간결한 언어가 촌철살인의 힘을 발휘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대통령의 언어는 거칠고 위압적이다. 독단과 독선이 가득한 지배자의 언어가 자주 등장한다. 자신을 대통령의 권좌에 오르게 한 51.6%만 배려한 언어라는 느낌도 든다. 대통령이 그러니 어느 도지사는 도의원에게 쓰레기, 어느 고위공무원은 국민을 향해 개돼지라는 말을 주저 없이 해댄다.


그런 부정적인 말과 거친 언어들이 정제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달되면 국민은 불안하고 불행해진다. 가려서 듣고 싶어도 언론이 받아 적어 활자와 소리로 전해주니 듣지 않을 수 없다. 눈과 귀를 가리고 싶지만 대통령의 언어 때문에 내 삶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흔히 사람의 생각은 언어로 드러난다고 한다. 정치인의 말은 정치인 그 자체라고 한다. 정치인은 언어로 자신의 견해나 입장을 표현한다. 언어사용으로 권력관계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언어는 사회변화를 이끄는 힘도 가지고 있다. 정치인은 유권자나 국민의 생각이나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진정성을 믿게 하는 설득과정에 언어를 도구로 사용한다. 언어의 정보적·설득적 기능을 잘 활용해야 정치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다.


정치적 소통은 바로 언어 또는 언어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인의 언어와 언어행위는 정치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요건이기도 하다. 그러니 정치인은 단어선택이나 언어행위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부정적 언어사용은 말실수만큼이나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신뢰도를 저하시킨다. 듣는 사람은 발언자의 표현 뒤에 숨어 있는 복합적인 동기나 진의가 무엇인지에 골몰해 전달력이 떨어진다. 그러니 국가지도자는 차별의 언어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과 치유의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적의의 언어나 전투적 언어 대신 희망의 언어를 자주 사용해야 한다. 분열과 갈등, 분노를 키우는 언어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보듬는 위안과 격려의 언어가 들려야 한다. 한 나라 국민 모두의 지도자로서 닫힌 언어가 아니라 열린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사드 배치와 관련한 논쟁이 불필요하다고 정의 내린 대통령의 인식과 언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논쟁일 수 있지만, 사드 배치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거쳐야 할 논쟁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에서는 논쟁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이미 독재정권에서 그런 경험을 한 바 있다. 대통령의 생각이 옳고 대통령의 말이 곧 진리니 따르라는 태도는 독선과 독단이다. 다수결로 대통령이 된 자신만이 절대가치라고 주장하는 오만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의 결정에 반기를 들면 대통령은 설득을 통해서, 논쟁을 통해서 국민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래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반대세력을 불순세력으로 낙인찍고 논쟁을 불필요한 것으로 정의 내리면 민주주의는 요원해진다. 아무리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이라도 충분한 논쟁을 거쳐야 한다. 이의를 제기하면 종북세력으로 내치고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며 대통령을 따르라는 주문은 독재시대에나 가능한 통치방식이다. 그런 통치방식이라면 누구나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에는 생각이 다르고 이념이 다양한 시민이 살고 있기 때문에 다양성을 존중하고 듣기 싫은 소리도 경청해서 국가정책을 조정하는 일이 바로 통치자의 몫이다.


민주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갈등과 대립을 타협과 통합으로 바꾸는 것이 정치다. 대한민국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국민은 없다. 그러니 비판세력을 불순세력으로 내몰고 종북좌파로 여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건전한 비판과 생산적인 논쟁이 벌어지도록 마당을 여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짐이 곧 국가이니 나를 따르라는 식의 국정운영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인식에 갇혀 있는 대통령의 단어선택과 언어행위는 국민을 불안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82108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