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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한용 - 그는 누구와 살고 있는 것일까

irene777 2016. 8. 3. 03:55



<성한용 칼럼>


그는 누구와 살고 있는 것일까


- 한겨레신문  2016년 7월 27일 -





▲ 성한용

한겨레신문 정치팀 선임기자



닷새 동안 휴가를 마치면 박근혜 대통령은 또다시 텔레비전에 자주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는 자신이 똑똑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은 반대인데 말이다. 

가끔 박근혜 대통령을 가만히 바라보면 섬뜩하다. 왜 그럴까?


그날 이후 머릿속을 맴돌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7월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꺼낸 몇 마디 얘기다.


“여기 계신 여러분도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소명의 시간’, ‘의로운 일’, ‘고난’이라는 표현이 무척 낯설다. 소명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일이다. 의롭다는 말도 성경에 자주 나온다. 의인 열 명만 있었어도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신임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연국 대변인은 아니라고 했다. “국가안보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소명을 말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가? 국가안보가 소명, 의로움, 고난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아무리 다시 봐도 목사님 설교로 읽힌다.


“자기편에 대해서는 선의라고 하는 관대한 심정윤리를 적용하고 상대편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 규정을 들이댈 뿐 아니라 심지어 악의를 갖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사고방식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선악 이분법적 흑백논리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2011년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책에 쓴 내용이다.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을 미리 내다본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종교적 사고방식은 어디서 온 것일까.


첫째, 죽음일 것이다. 그의 삶에는 늘 죽음이 어른거렸다. 어머니가 총에 맞아 숨진 것이 22살, 아버지가 총에 맞아 숨진 것이 27살 때였다. 그 자신도 얼굴에 칼을 맞고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2007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서문에 2006년 피습 사건을 자세히 썼다.


“이제부터 남은 인생은 하늘이 내게 주신 덤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나에게 할 일이 남았기에 거둬갈 수 있었던 생명을 남겨둔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 잃을 것도, 더 욕심낼 것도 없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나의 삶은 2006년 5월에 1막을 내렸다.”


비장하다. 여생은 소명이라는 얘기다.


둘째, 최태민(1912~1994) 목사의 존재다. 그는 목사로 불렸지만 안수를 받은 적이 없다. 1974년 어머니를 잃고 상심해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접근했다. ‘국모’를 등에 업고 1975년 대한구국선교회(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를 결성해 총재를 지냈다. 온갖 비리 의혹이 일었다. 그는 제정 러시아 말기 라스푸틴과 비교가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뒤에도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 목사가 내가 어려운 시절에 도왔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한 적이 있다. 2014년 말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킨 정윤회씨가 그의 사위다. 최순실씨가 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에 대해 방어적인 것도 최태민 목사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중앙정보부가 최태민 목사의 비리를 수집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부장과 관계자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불러 직접 조사를 했다. ‘친국’을 한 것이다. 그런데 중앙정보부는 이 자리에서 비리의 실체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


당시 청와대 사람들의 증언이다. 억울함은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3인방과 우병우 민정수석 등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는 이유가 트라우마 때문일 수 있다.


걱정이다. 역사는 세속의 정치 지도자가 종교적 사고를 할 때 얼마나 끔찍한 일을 벌였는지 증언한다. 정치적 반대자를 절대 악으로 몰아 목숨을 빼앗았다.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야만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그럴 리는 없다. 그러나 선악 이분법적 사고는 너무나 위험하다.


대화와 타협은 정치의 핵심이다. 종교에서 악마와의 대화와 타협은 죄악이다. 혹시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여당 비주류, 야당, 언론,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악의 세력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큰일이다.


닷새 동안 휴가를 마치면 박근혜 대통령은 또다시 텔레비전에 자주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는 자신이 똑똑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은 반대인데 말이다. 가끔 박근혜 대통령을 가만히 바라보면 섬뜩하다. 왜 그럴까?



- 한겨레신문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41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