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칼럼> 정제혁 - 청와대의 세월호 수사 외압

irene777 2016. 8. 3. 15:45



[기자칼럼]


청와대의 세월호 수사 외압


- 경향신문  2016년 7월 29일 -





▲ 정제혁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통화 녹취록이 얼마 전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녹취록에는 이 수석이 KBS의 세월호 관련 보도에 외압을 행사한 정황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이 수석은 특히 해경의 구조 실패를 비판하는 기사를 막는 데 사활을 걸었다. 몇 대목을 옮겨보자.


“9시 뉴스에 다른 데도 아니고 말이야 이 앞의 뉴스에다가 지금 해경이 잘못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내고 있잖아요.” “방송이 지금 해경을 밟아놓으면 어떻게 하겠냐고요.”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렇게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패야지만 그게 맞습니까?”


이 수석이 해경의 구조 실패 기사를 틀어막는 데 집착한 것은 구조 실패는 곧 정부의 직접적 책임과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정부 책임론’으로 흐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 것이다.


그런데 검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근자에 알게 됐다. 청와대·법무부가 해경에 대한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경우다. ‘정부 책임론’을 차단하려고 홍보수석은 언론 보도를, 민정수석실은 검찰 수사를 통제하려 드는 등 청와대가 총동원된 것이다.


2014년 7월29일 광주지검 해경수사 전담팀은 목포해경 123정장 김모 경위를 긴급 체포했다. 세월호 사고 당일(4월16일) 함정일지 일부를 찢어내고 구조활동 서너 가지를 허위로 기재한 혐의였다. 당초 검찰은 공용서류 손상,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와 함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김 경위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했다. 그러나 청와대·법무부는 구속영장 청구에 반대했다. 특히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에 반대했다. “구조하러 간 해경이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 국가기관이 뭐가 되느냐”는 취지였다.


검찰은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등 혐의만 적용해 김 경위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영장의 피의사실만으로는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지 못한 것이 기각의 원인이 된 셈이다.


김 경위를 기소하는 문제를 놓고도 검찰과 청와대·법무부는 충돌했다.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도 적용해 기소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법무부는 완강하게 반대했다. 변찬우 당시 광주지검장은 “사표를 쓸 수밖에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가까운 대검 간부에게 이런 입장을 전달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변 지검장이 당시 상황을 구술해놓은 기록이 있다. 변호사 개업 뒤인 지난 3월 대구매일신문 인터뷰다. “경비정 정장에 대한 구속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청와대와 법무부는 달랐다. 사고나 재난 구조자에 대한 처벌 전례가 없는 데다, 해경 정장에 대한 처벌을 할 경우 책임이 국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게 법무부의 판단이었다. 해경 경비정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려고 했지만 청와대와 법무부는 기소조차 꺼려했다. 사표를 낼 각오로 상부를 설득했고, 결국 구속은 하지 못했지만 기소는 할 수 있었다.”


광주지검은 김 경위를 체포한 날로부터 70일 가까이 지난 10월6일에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을 적용해 가까스로 기소했다. 광주지법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해 김 경위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검찰의 법률적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당시 법무부 장관, 요즘 인구에 널리 회자되는 우병우 민정수석이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다. 이듬해 두 사람은 국무총리(6월)와 민정수석(1월)으로 영전한다. 그러나 변찬우 지검장은 연말에 단행된 검찰 인사 때 고검장을 달지 못하고 옷을 벗었다. “정권에 미운털이 박혀서”라는 얘기가 돌았다. 당시 검찰 인사를 주도한 사람은 우병우 수석으로 알려져 있다.



- 경향신문  정제혁 정치부 기자 -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92025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