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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용인 - 트럼프를 버려야 한다

irene777 2016. 8. 23. 02:32



<특파원 칼럼>


트럼프를 버려야 한다


- 한겨레신문  2016년 84일 -





▲ 이용인

한겨레신문 워싱턴 특파원



이제 ‘트럼프를 버려야’(Dump Trump) 한다.


솔직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처음으로 ‘북한 김정은과도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했을 때 잠시 솔깃하기도 했다. 그래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인터뷰에서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면서도, 북한 관련 언급에 대해선 “유일하게 흥미를 가질 만한 부분”이라고 트럼프를 평가했을 때 공감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8년 동안 ‘전략적 인내’, ‘대북 제재 강화’ 등 고장난 레코드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해왔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은 길을 잃었다. 이런 현실에 식상하고 피로에 젖은 사람들에게 트럼프가 불쑥 내뱉은 ‘대화’라는 말은, 트럼프의 화법을 빌리면, ‘매우, 매우, 매우’ 실낱같은 기대를 품게 한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가 ‘정말, 정말, 정말’ 진지한 고민 끝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했을까? 아닌 것 같다.


트럼프는 지난달 31일 <에이비시>(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 문제는 우리의 남북관계만큼이나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니, 그가 북한에 대해 도대체 얼마나 고심하고 대답했을까 의문이 든다. 중요한 기본 사실조차 모르고 진지함마저 결여된 그의 레토릭(말치장)들이 정책으로 연결될 리도 없고, 일관되게 이행될 리도 없다.


트럼프가 러시아나 북한에 대해 왜 우호적인 발언들을 내놓을까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냥 선거전략일 뿐이다. 트럼프의 지지층인 중남부 미국 서민들은 외교안보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먹고사는 문제가 팍팍해지면서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가득 차 있다. 미국의 패권 유지와 동맹을 옹호하는 기성 정치권에 맞서 트럼프가 나토에, 한국에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할 때마다, 그 돈이 자신들의 복지에 쓰일 거라 여긴다. 러시아나 북한에 대한 발언도 ‘반(反) 기성 정치’란 그의 감각적 선거전략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참모들 조언을 듣지 않을까? 아닐 것 같다.


참모가 별로 없을 것이다. 백악관이나 부처 장차관은 어찌어찌 꾸리겠지만, 중간 관료에 임명할 사람들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공화당 성향의 싱크탱크 외교안보 전문가 절반가량이 트럼프 지지나 합류를 거부하고 있다. 싱크탱크 전문가들이 대거 행정부에 입각하는 것이 미국의 전통인데, 이런 상황이라면 트럼프는 인물난에 허덕일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트럼프의 폐쇄적이고 일방적인 리더십이다. 트럼프도 대면보고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에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심지어 문서 형태의 보고서를 읽는 것도 싫어하고 참모들 이름도 거의 모른다고 한다. 미국 국내 문제를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처럼, 외교 문제도 자신이 전문가라고 강변한다. 그러니 ‘십상시’ 중심으로 만든 정제되지 않은 정책들이 쏟아질 것이다.


과정이 뭔 대수일까,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합의문만 만들어내면 되는 것 아닐까?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궁지에 몰릴 때마다 ‘먹튀’를 했다. 카지노 사업이 그랬고, ‘트럼프 대학’이 그러했다. 오랫동안 버라이어티 쇼를 진행해온 그는 시청률(지지율)이 떨어지면 자극적이고 새로운 각본을 들이댈 것이다. 좀 오래된 얘기지만 그는 북한 폭격론을 주장한 이력이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목도하는 미국 대선은, 한반도 관점에서만 보면, 최악을 피하는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 한겨레신문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7551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