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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준형 - 매트릭스, 부산행, 그리고 사드

irene777 2016. 8. 25. 01:09



[정동칼럼]


매트릭스, 부산행, 그리고 사드


- 경향신문  2016년 8월 4일 -





▲ 김준형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



지난 한달 동안 나라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사드 배치 논란을 목도하면서 두개의 영화가 겹쳐 떠올랐다. 상영된 지 꽤 시간이 흐른 <매트릭스>와 최신의 <부산행>이다. 전자는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의 기본 속성과 닮아있고, 후자는 우리가 사드를 배치하게 되면 마주하게 될 양상의 일면을 보여준다.


<매트릭스>는 SF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다. 복잡한 플롯과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그리고 전편에 흐르는 철학적 질문들로 유명하다. 인류가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의 개발에 성공했지만, 급속도로 발전한 기계와 결국 전쟁을 치른다. 전쟁에 패배한 인간은 거대한 컴퓨터 네트워크의 지배를 받는데, 기계는 자신의 촉수 끝에 있는 수많은 배양 캡슐에 인간들을 연결해 가상현실을 부여하고,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 거기서 나오는 생각에너지를 동력으로 삼는다. 전쟁에서 패배한 인류 중 주인공을 포함한 일부 생존자들은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어 대항한다는 것이 큰 줄거리다.


미국은 2000년대 이후 군사기술의 혁명적 발전으로 매트릭스 같은 통합적 네트워크형으로 진화해왔다. 탈냉전 이후 미국의 국방전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전략가이자, 현 국방장관인 애슈턴 카터는 지난 6월20일 신미국안보센터(CNAS)에서 오바마 정권 8년의 국방전략을 정리하는 동시에 미국이 글로벌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한 미래형 전략으로 “네트워크 중심의 대전략(Grand Strategy of Network Centrality)”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영화에서처럼 거대한 컴퓨터 네트워크로 세계전략을 통합·운용한다는 것인데, 핵심 중 하나가 미사일방어 체계 MD이고, MD의 핵심이 곧 사드다. 미국의 MD 체계는 탐지부터 요격을 위해 전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시키는 안보체계다. 탐지와 요격의 성패는 촘촘한 방어망의 구축 여부에 있는데 미국은 바로 이를 위해 동맹국들과 연결하고 통합·운용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 재균형전략에 의해 구체화되고 있는 사드 배치는 그 일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민구 국방장관이 국내 반대여론을 의식해, 한반도에 배치되는 사드는 MD의 일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미군이 운용하는 MD 체계의 핵심인 사드가 미국의 지휘통제시스템과 연관성이 없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카터 장관부터 사드 결정 직전 방한했던 프랭크 로즈 미 국무부 군축·검증·이행 담당 차관보까지 사드는 MD의 일부라는데도 우리만 부인하는 이상한 풍경이다. 2012년 6월 한·미 국방외교장관 2+2회담에서 나온 ‘포괄적 연합방어태세’와 2014년 한·미 정상회담 이후 지속적으로 등장한 ‘상호운용성 확보’는 바로 이러한 네트워크 연결에 초점이 있으며, 이번 사드 배치로 귀결된다. 상호운용성이라고 표현되지만, 사실은 우리는 중앙컴퓨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촉수에 불과하다.


사드가 단순한 포병중대라거나 방어무기 차원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드 배치 결정은 미국의 네트워크 전략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루비콘적 통과점이 될 것이다. 이는 좀비에게 물리는 것과 같다는 점에서 두 번째 영화가 떠오른다. <부산행>은 좀비 바이러스의 창궐을 피해 KTX를 타고 악전고투를 벌이는 매우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좀비영화가 공포영화로 분류되는 이유는 좀비에게 물리면 자율의지가 없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는 순간 좀비에게 물린 것처럼 미국 미사일방어망의 일부가 되어 미국의 전략에 종속될 가능성이 커진다. 전시작전통제권까지 부재한 상황에서 한국의 필요보다 미국의 필요에 최적화되면서 빠른 속도로 통합되어갈 것이다.


좀비영화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공권력의 실체다. 재난에도 속수무책이지만, 초기에 사람들의 경고를 무시함으로써 일을 키워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상황을 악화시킨다.


군대와 경찰은 피해자와 공격자도 구분하지 못한다. 좀비들에게 쫓겨 도망가는 시민들을 불법시위자로 간주하고, 차단벽을 넘어오는 이들을 향해 무차별 폭력을 가한다. 현재 상황 파악도 못하고, 국민을 이간질해 분열시키는 정부의 모습과 일치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매트릭스> 1편에서 모피어스가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주인공 네오에게 주면서 선택하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파란 약은 안락한 가상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반면, 빨간 약은 고난의 현실을 각오해야 한다. 과연 우리가 주인공처럼 빨간 약을 선택함으로써 냉전적 진영대결과 안보절대주의 체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기를 거부하고 평화를 위해 싸워나갈 수 있을까?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04205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