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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지봉 - 경제민주화와 헌법정신

irene777 2016. 8. 25. 01:36



[정동칼럼]


경제민주화와 헌법정신


- 경향신문  2016년 8월 7일 -





▲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즉, 우리의 국가형태를 ‘공화국’으로 규정지으면서도 그 공화국의 이념과 성격으로서 ‘민주주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 헌법상의 ‘민주주의’를 일부에서는 ‘자유민주주의’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헌법학자들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자유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 다원적 민주주의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민주주의’를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로 보고 있다. 특히 정치영역에서는 표현의 자유 등 각종 시민적 자유가 굳건히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가 강조되지만, 경제영역에서는 국민 모두에게 기본적 생활의 수요가 충족되고 재벌 등의 경제력 독점을 막고 ‘경제민주화’가 실현되는 ‘경제민주주의’ 내지 ‘사회민주주의’가 강조돼야 한다고 본다.


헌법상 경제민주주의의 핵심인 ‘경제민주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노동자들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이제는 정치적 영역 외에 부의 분배와 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경제적 민주주의의 개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즉, ‘경제민주화’란 경제관계의 민주화를 통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성취로서 1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유럽식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조소앙의 삼균주의 등 임시정부 헌법을 거쳐 광복 전후의 헌법구상으로 대두됐던 여러 국내의 자생적 경제사상과 합쳐지면서 초대 헌법인 제헌헌법의 경제조항들을 낳았다.


헌법에 경제에 관한 독립된 장(障)을 마련하고 총 6개의 비교적 상세한 경제조항을 규정한 제헌헌법은 그중 핵심조항인 제84조에서 경제질서의 원칙을 제시했다. 이 제84조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고 규정하였다. 균등주의의 이상을 추구한 경제민주화 내지는 경제민주주의를 헌법상 경제질서의 대원칙으로 내건 것이다. 그 외에 경자유전의 원칙에 입각해 농지를 농사짓는 농민에게 주는 농지개혁, 자연자원의 국유화,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등 공공성을 띤 중요 기업들에 대한 국영화 등이 규정되었고, 대외무역에 대한 국가통제도 조문화됐다. 이처럼 제헌헌법은 큰 틀에서 자본주의 시장체제를 내세우면서도 사회경제적 색채를 띤 경제민주주의를 표방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 후 1954년 제2차 개헌에서 헌법의 경제조항은 다소간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색채를 강화하고 통제경제적 요소를 완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이 정하는 경제질서가 전환됐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이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 자유의 보장을 강화한 것은 맞지만 여전히 수정자본주의로 하여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사회적 경제적 평등의 요청을 헌법에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헌헌법 이래의 경제민주주의 내지는 경제민주화의 정신은 간단없이 이어졌다. 오히려 1980년의 제7차 개정헌법에서 보듯 대기업과 독과점업체의 폐단이 두드러지면서 중소기업, 소비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헌법에 조문화됐다. 구체적 규정으로서 독과점의 규제 및 조정, 중소기업의 보호 및 육성, 소비자보호운동의 보장 등 새로운 내용의 경제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이러한 경제민주주의 이념은 1987년 개정된 현행헌법에서 제2항에 위치하면서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으로 규범화됐다. 현행헌법 제119조 제2항은 제헌헌법 이래 유지해 온 큰 틀인 사회정의와 균형 있는 국민 발전을 위한 경제적 규제와 조정을 문구 수정해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했던 것이다.


이렇듯 ‘경제민주주의’나 ‘경제민주화’는 최근에 제기된 새로운 가치가 아니다. 초대 제헌헌법부터 이어져 오는 우리 헌법의 핵심정신이다. 현재 우리는 ‘사회 양극화 해소’라는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를 떠안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지혜를 제헌헌법 이래 우리 헌법의 핵심정신이 되어왔던 ‘경제민주화’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국회나 정부는 재벌 개혁, 중소기업 육성, 경제적 약자 보호 등 경제민주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들을 고민하고 법률화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의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072055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