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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한종 - ‘돈과 힘’ 앞세운 밀어붙이기식 교육 정책

irene777 2016. 8. 27. 01:15



[정동칼럼]


‘돈과 힘’ 앞세운 밀어붙이기식 교육 정책


- 경향신문  2016년 8월 9일 -





▲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역사교육학과)



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집단행동이 계속되는 등 아직까지 문제가 완전히 일단락된 것은 아니지만,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평단사업) 추진에서 비롯된 이화여대 사태는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학교 당국은 학생들의 강력한 반발과 동문을 비롯한 사회의 부정적 여론에 밀려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번 이화여대 사태는 오늘날 한국의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문제들은 해소되지 않은 채 교육 정책이나 대학 내부에 그대로 잠복해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첫째, 돈을 가지고 교육을 통제하는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 이화여대가 평단사업에 참여한 것은 35억원의 지원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재정 지원을 매개로 대학에 정부의 교육 정책을 받아들이고 구조조정을 시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상화되고 있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2014년의 대학특성화 사업이나 올해부터 시행된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도 이런 방식으로 추진됐다. 교육부의 재정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대학들은 이들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교육부가 제시한 조건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화여대와 같이 이른바 ‘메이저 대학’조차 그러할진대 작은 규모의 지방대학들은 이런 사업에서 배제될 경우 존폐의 위기마저 느낀다. 이처럼 돈으로 교육을 좌우하는 것은 대학 지원뿐 아니라 교육의 핵심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교원을 대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구성원들과의 소통이나 합리적 의사결정을 거치지 않은 정책 집행이다. 이번 이화여대의 문제를 키운 것은 총장을 비롯한 학교 당국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이었다. 대학 입학이 삶의 과정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며 이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이는 한국의 현실에서, 일반적인 절차와는 다르게 입학할 수 있는 단과대학의 설립은 학교 당국이나 교수뿐 아니라, 학생과 동문 등 여러 구성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다. 구성원의 성격에 따라 이 정책에 대한 입장은 다를 수 있다.


그런데도 시간의 촉박함만을 내세워 별다른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것은 힘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일방적으로 결정한 정책을 밀어붙여 봐서 별다른 반발이 없으면 그대로 시행하고, 반발이 심하거나 여론이 좋지 않으면 그때 가서 조정하는 현상을 우리는 정치에서 자주 접한다. 사드 배치 장소의 결정도 그런 사례다. 한국의 정치가 ‘정치’가 아닌 ‘통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의사결정과 정책 집행을 대학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여러 대학에서 특성화사업이나 프라임사업에 참여한 대학들이 일방적으로 특정 학과를 폐지한다고 발표함으로써 심각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셋째,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대학교육의 가치는 갈수록 실용성이 기준이 되고 있다. 대학 홍보 문구에는 으레 ‘취업’이 등장한다. 학과나 전공의 설립과 폐지의 기준은 취업률이다. 이런 풍토 속에서 기초 학문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여러 대학에서 프라임 사업을 위해 자연대의 정원을 줄이거나 공대로 전환하는 현상도 빚어졌다. 많은 대학들은 평생교육원을 두고 있다. 학사학위 과정의 학점은행제를 운영하기도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이화여대도 마찬가지다. 평단사업 참가 대학들이 설립하려는 학과와 비슷한 전공을 설치하고 있는 전문대학들은 이 사업을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전문대가 담당할 수 있는 교육 영역을 4년제 대학의 학부에 맡기려는 것은 ‘대학 줄 세우기’에 다름 아니라는 시각이다.


그렇지만 평단사업을 추진하면서 교육부는 전문대학들과도 의견을 나누지 않았다.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평생교육원 등 교육기관들은 독자적인 존재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오직 취업과 실용성의 잣대로만 교육의 가치를 판단하는 교육 정책은 각 기관의 교육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화여대 문제를 사회 일부에서는 ‘명문대생’이 가지는 엘리트 의식이나 특권의식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물론 이는 우리 사회가 경계해야 할 일이며 청산해야 할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이번 문제의 핵심은 돈과 힘을 바탕으로 하는 소통 없는 ‘밀어붙이기’식의 의사결정과 집행이다. 한국 사회가 민주적 의사결정을 이루지 못한 채 사회구성원 간에 대립과 갈등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09212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