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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원책 - 대통령의 축하 난

irene777 2016. 8. 27. 16:36



[시론]


대통령의 축하 난


- 경향신문  2016년 8월 11일 -





▲ 전원책 변호사



이 나라 ‘보수’들에게 새누리당은 어떤 존재인가? 비록 이념이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새누리당이 보수를 대변한다는 걸 믿어야 되는 것인가? 아니면 보수가 마지못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정당인가? 안보정책을 제외한다면 새누리당의 강령이나 정강·정책,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정책 어디가 보수주의에 입각한 것인가? 그들은 보수정당을 자임할 만큼 충분히 상식적이고 도덕적인가? 사실 이런 질문은 우리 정치판에 그리 합당한 질문이 아니다. 여야 할 것 없이 정당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명망가를 좇아 모이는 과정에서 당의 정체성이 통째 바뀐 게 한두 번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보수정당이라는 소리도 흰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우리 정당들은 다들 친서민을 내세우며 ‘누가 더 대중에게 유혹적인가’로 다투는 중이다. 그 ‘친서민’도 표를 얻기 위한 분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무슨 친목모임이나 협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도 좋게 보아 그런 것이고 정치학적으로 따진다면 포퓰리즘에 매몰된 ‘패거리’라 불러야 맞다. 내가 너무 지나친 말을 하는 것인가? 그러나 이 말은 진실이다. 그리고 이 점이 역대 문민정부를 부패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 진짜 원인인 것이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이 이 나라 보수를 대변한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그 보수층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면 말이다.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이정현 의원이 당선되자 언론이 일제히 ‘보수정당에서 호남 출신이 처음 대표가 됐다’고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영남은 보수요 호남은 진보라는 등식이 은연중에 성립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 의원은 이제 당당히 보수정당의 대표다. 언론의 오두방정처럼 이건 혁명적 사건일 수 있고, 또 정치판에 새로운 리더가 등장한 것은 축하해야 마땅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새 대표가 정치판을 바꿀 리더라기보다 기껏 일년짜리 대선 레이스 관리인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실 이번 당권싸움은 처음부터 대권 레이스와 연계됐다. 김무성 전 대표는 노골적으로 비박 후보를 후원했다. 친박도 노골적으로 ‘오더’를 내렸다. 한선교 후보가 그 ‘오더’의 장본인을 ‘잡상인’으로 매도했을 정도다. 그래선지 경선이 끝나자 대중의 관심은 새누리당이 ‘도로친박당’이 된 데 쏠렸다. 최고위원 한 명만 빼고 지도부가 친박 일색이 된 것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하나는 누구도 따를 수 없다는 인물이다. 하긴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과 가까운 걸 탓할 일은 아니다. 그래도 세간의 시선은 차갑다. 지난 총선 때 공당의 공천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참패하게 했던 친박이 넉달이 안 돼 다시 당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김무성은 망했고 반기문은 살판났다는 3류 평석들이 쏟아진다. 대선판이 그런 엉터리 예측처럼 굴러가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만은 확실하다. 비박이 당권을 잡았다면 몰라도 친박이 당권을 잡은 이상 적어도 새누리당은 과거 열린우리당처럼 와해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 말이다. 비박과 친박이 정책 차이로 나뉜 정파가 아닌 데다가 비박은 친박처럼 ‘살아있는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들을 광야로 끌고 나갈 전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전투력이라곤 없는 온실 속 화초요 책상물림들이다.


어쨌든 대통령의 레임덕은 늦춰질 모양이다. 이 대표는 공식일정을 시작하자마자 ‘대통령과 맞서는 걸 정의라고 인식한다면 여당 의원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축하 난을 들고 온 정무수석을 만나서다. 그러니까 여당 밥을 먹고 있으려면 대통령에게 반대하지 말라는 엄포다. 그 말대로 해서 정권재창출이 된다면 박근혜 정부는 무결점 정부가 된다. 그것이 그가 슬로건으로 내세운 ‘섬김의 리더십’인가? 혹 그 섬김이 대통령에 대한 섬김은 아닌가? 대통령이 보낸 난초는 청와대에서 키웠기 때문에 김영란법에서 금지하는 5만원을 따질 수 없다고 한다. 그 난초가 비를 맞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1210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