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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기영 - 화학물질이 도둑질한 인류의 미래

irene777 2016. 8. 27. 03:49



[시론]


화학물질이 도둑질한 인류의 미래


- 경향신문  2016년 8월 8일 -





▲ 이기영

호서대 식품공학과 교수

초록교육연대 공동대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한국사회가 생활화학물질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매일 사용해온 치약, 샴푸, 화장품은 물론 방향제나 가공식품에 첨가된 방부제와 색소, 농약에 이르기까지 하루에도 무의식적으로 수십 가지의 화학물질들을 사용·섭취해 왔는데, 이런 제품들을 하루아침에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몇 년에 걸쳐 수백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날 정도로 심각해진 것은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가 지나치게 느슨해 많은 화학물질들의 사용이 검증되지 않은 채 허가된 결과이다.


당장 급성 독성으로 인한 이상이 없어도 지난 20여년 동안 비염이나 천식, 암 등 그 전엔 드물던 염증성 질병들이나 비만, 당뇨, 고혈압, 심장병 등 만성 대사성 질병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이들 화학제품의 사용과 무관치 않다.


또 남성들의 정자 수가 급감하거나 불임률이 높아지는 원인으로 지목된 환경호르몬도 큰 사회문제이다. 이번 기회에 유해화학물질들을 퇴출시킬 수 있도록 법적인 거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1962년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였던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이란 책에서 DDT 등 살충제가 많은 동물들의 생식기능을 약화시켜 멸종의 위험에 이르게 만든다는 사실을 폭로해 처음으로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렸다.


인류가 합성해 사용해온 많은 화학물질들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던 물질이어서 이를 분해할 수 있는 효소도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인체나 생태계 사슬에 축적돼 생명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다. 더 충격적인 것은 현재 합성돼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수십만 가지에 이르고 매년 수백, 수천 가지의 화학물질이 새로이 출현함에도 현재 검출 대상인 유해화학물질은 겨우 수백 종류에 불과하고 이런 화학물질도 생체독성에 대한 연구는 느리고 미진한 상태란 사실이다.


산업혁명 이후 지난 100년간 현대 석유 기반 문명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수십만종의 화학물질들을 생태계에 쏟아부었고 현재 인류가 사용 중인 화학물질만 해도 10만가지가 넘는다.


현대인들은 하루 12㎏ 정도의 공기와 1㎏ 정도의 음식을 먹으며 살고 있다.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사용하는 화장품, 치약, 샴푸 등 세제, 식품에 들어가는 방부제와 색소를 비롯해 농약과 살충제, 표백제, 건축마감재, 심지어 입술에 바르는 립스틱부터 콘돔에 이르기까지 화학물질 사용이 필수 불가결하게 되었다.


이러한 화학물질은 맹독성인 것도 많으며, 일부는 공기 중에 있다가 피부를 통해 몸 안에 축적돼 분해되지 않거나 체외로 잘 배출되지도 않는다. 또한 면역체계를 교란하거나 신경전달물질들과 결합해 면역질서를 파괴해 아토피나 비염, 천식, 알레르기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일부는 생태계에 축적되며 먹이사슬을 통해 야생동물은 물론 우리 몸에도 쌓인다.


얼마 전 영국의 한 연구기관에서 유방암 환자 160명을 대상으로 암세포를 조사한 결과 99%에서 방부제인 파라벤이 검출돼 여성들을 경악시켰다. 또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최근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살균제 트리클로산이나 계면활성제 SLS를 첨가해 거품이 잘 나는 대부분의 치약도 간장독성과 발암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07년 유해물질들을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취지로 환경부가 주도해 ‘환경보건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당시 산업자원부가 업계에 부담을 준다며 난색을 표해 제품 유해물질의 종류나 함량을 표시하고 유해성이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사용을 금지하는 조항 등이 삭제됐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산업체에서 무독성이 입증되지 않은 화학물질들은 절대 사용할 수 없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음식 재료나 생활용품 및 건축재들은 가능하면 합성된 화학물질보다는 자연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가공식품의 경우, 식물 등에서 뽑은 자연 항균제나 항산화제, 식물성 색소 등 천연원료인지 확인하는 민감성을 가져야 한다. 특히 가임기 여성들은 환경호르몬 유발 물질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플라스틱 용기에 든 즉석 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대신 유리나 도자기 용기를 활용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082047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