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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창록 - 일본의 10억엔, 필요 없다

irene777 2016. 9. 1. 14:41



[시론]


일본의 10억엔, 필요 없다


- 경향신문  2016년 8월 15일 -





▲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작년 12월에 발표된 일본군 ‘위안부’ 관련 한·일 합의의 실체가 보다 명확해졌다. 지난 12일 기시다 외상은 윤병세 외교장관과 통화를 한 후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가 내놓을 10억엔은 “의료와 간병”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소녀상 문제의 적절한 해결을 위해 일·한합의의 착실한 실시를 계속 요구”하겠다고 못 박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본 측은 지난 9일의 한·일 국장급협의에서 “의료와 간병”에 한정해 “일일이 관련 영수증을 제출받는 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또 일본 측이 “배상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리하자. 첫째, 10억엔은 ‘배상금’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사실상 배상금 성격’이라고 우기지만, 돈을 내놓는 쪽에서 배상금이 아니라고 하는데 무슨 수로 그 돈이 배상금이 될 수 있겠는가? 둘째, 10억엔은 일본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집행할 수 있는 돈이다. 한국 정부는 재단이 결정한다고 우기지만, 이미 돈이 온다는 결정이 나기까지 국장급협의와 외교장관 전화회담을 거쳐야 했고, 합의 자체에도 재단의 사업은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하도록 되어 있다. 셋째, 10억엔은 소녀상 철거를 위한 마중물이다. 기시다 외상이 못 박았듯 10억엔의 지출이 완료되면 “일본 측의 책무는 다한 것이 된다”. 당연히 소녀상에 대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한국 측의 합의를 지키라고 몰아붙일 것이다. 한국 정부는 줄곧 “소녀상 문제는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추진한” 것이므로 “정부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12일자 외교부 보도자료에도 “양 장관은 합의의 충실한 이행을 재확인”했다고 되어 있다. 10억엔이 오면 한국 정부는 소녀상 철거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이다.


1965년의 청구권협정으로 내놓은 무상 3억달러의 성격에 대해 일본 정부는 “새로운 국가의 출발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주는 ‘독립축하금’이라고 했다. 2015년의 합의로 내놓을 10억엔의 성격에 대해서는 “의료와 간병”을 위한 ‘치유금’이라고 한다. 3억달러에도 10억엔에도 ‘가해자’는 없다. ‘너그러운 인도적 지원자’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1965년에는 ‘가난한 대한민국이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할 여지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일일이 관련 영수증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참 꼼꼼한 ‘인도적 지원자’이기도 하다.


일본군 ‘위안부’ 한·일 합의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명명백백하게 확인되었다. 일본으로부터 10억엔을 받을 명분도 실리도 이유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는 역대 정부에서 한번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다. 김영삼 정부는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김대중 정부는 일본의 국민기금을 거부하는 피해자들을 적극 지원했다. 노무현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고 선언했다.


역대 정부의 조치들은 지난 4반세기 동안 ‘진정한 해결’을 호소해 온 고령의 피해자들과 그들의 호소에 응답한 전 세계 시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10억엔의 ‘치유금’을 받고 끝낼 문제였으면 1995년 국민기금의 ‘위로금’으로 끝났을 터이다. 그것을 거부하고 20년 이상 ‘공식사죄와 법적 배상’을 외쳐온 피해자들의 피맺힌 외침을 ‘화해와 치유’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미명으로 덮으려 하는 것은 그저 ‘몰역사’일 뿐이다.


10억엔, 필요 없다. 잘못된 합의 때문에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는 이 모든 논란, 애당초 필요 없다. 대한민국의 법률에 따라 대한민국의 예산으로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기념사업을 하면 된다. 11조원의 추경을 심의하는 국회가 그중 100억원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배정하기만 하면 다 끝날 논란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52109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