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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송기호 - 김정은의 핵과 트럼프의 핵

irene777 2016. 9. 1. 17:32



[세상읽기]


김정은의 핵과 트럼프의 핵


- 경향신문  2016년 8월 8일 -





▲ 송기호 변호사



스노든의 폭로로 많이 알려진 ‘인터셉트’는 지난 4일에 중국이 APIC라는 서류상 회사를 통해 젭 부시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자에게 130만달러를 기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는 ‘슈퍼 팩’이라고 해서, 출마자와 지출을 협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지출할 것을 조건으로 해서 제한 없는 정치자금 기부를 허용한 제도가 있다. 중국이 이 틈을 노려 이름뿐인 미국 회사를 만들어 거액을 특정 후보에게 기부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주권자가 아닌 외국인의 정치자금을 받는 것은 불법이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중국은 왜 이러한 불법을 시도했을까? 중국은 미국의 정책결정 구조 속에 살아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은 중국의 안전보장에 가장 큰 변수이다. 한국의 경우는 북한과 미국이다. 그리고 핵심은 핵무기다. 북한이 핵무장의 동기로 내세운 것은 미국의 핵사용 위협이다. 미국이 사드 배치를 관철시킨 동기 또한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대기권 재진입 실험 성공이다. 북한이 일본이나 괌 주둔 미군에 핵무기를 사용할 기술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자, 미군의 보호를 위해 사드가 필요하게 됐다.


한국 안보의 가장 큰 모순은 북한과 미국의 핵무기에 대한 영향력에 있다. 비핵화는 국민경제의 요구이지만 한국은 이를 실현할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 상대방에 대한 영향력이란 상대방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파괴나 제압이 아니다. 그러나 개성공단 폐쇄 이후, 남북한은 서로를 향해 저강도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니 영향력이 얼마나 있는지 살필 상황이 아니다. 서로가 극단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트럼프의 등장에는 미국의 제도 정치권이 받아안지 못한 대중의 분노와 좌절이 현실적 변화를 만들어 낸 점이 있다. 일시적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다문화 융합을 구성 원리로 하는 미국에서 트럼프라는 문화 차별주의자가 공화당이라는 제도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다는 것은 미국의 퇴보이다. 그는 지난 3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일본 비핵화라는 미국 정책을 바꿔야만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일 일본이 핵무장을 하면,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의 핵 대결 위협의 한가운데에 놓일 것이다.


트럼프의 등장 이후, 미국의 의회 전문지인 ‘힐’이 6일 보도한 바와 같이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핵무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일 공식적으로 트럼프의 핵무기 사용 결정 능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오로지 선거운동 차원만이 아니다.


국제관계에서 다른 나라에 만병통치약과 같은 한 방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중국이 부시 후보를 위해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도 오랜 기간의 체계적 접촉과 소통이 있어야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셉트가 말한 중국 회사도 오랫동안 미국인 종업원의 이름까지 빌려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 그리고 트럼프의 등장은 한국 안보 지형의 본질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핵무기라는 근본적 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한반도 비핵화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평화협정이다. 전자는 북한 핵무기에 대해, 후자는 미국 핵무기에 대한 대안이다.


중국이 그렇듯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외면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안보 문제 해결에 달라붙어야 한다. 한국 안보 지형의 특색은 한국이 끈을 놓아 버리면 반드시 더 악화되고 끈을 당기면 개선된다는 점이다. 안보의 끈을 한국 쪽으로 잡아당겨야 한다. 돈으로 안보와 평화를 살 수 있다면 돈을 주어서라도 사야 한다. 안보는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남이 대신 해결해 주지 않는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082044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