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칼럼> 서보학 - 검찰 개혁, 수사·기소권 분리부터

irene777 2016. 9. 27. 02:15



[시론]


검찰 개혁, 수사·기소권 분리부터


- 경향신문  2016년 9월 5일 -





▲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몇 명의 전직 검사들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주식을 상납받아 120억원의 재산을 일군 진경준 전 검사장, 전관예우로 수백억원을 벌어들인 홍만표 변호사, 처가 부동산의 특혜성 매각 등 여러 비리 의혹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의 추문으로 궁지에 몰린 검찰은 지난달 31일 ‘법조비리 근절 및 내부청렴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비록 후속 방안도 논의한다고 했지만, 시간끌기용 개혁 시늉의 성격이 강하고 내용은 정말 별것 없다. 한마디로 ‘우리가 셀프 자정을 할 테니 외부 간섭은 사양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단죄하는 검찰이 검사 비리에 대해서는 외부의 감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특권의식을 고집한 것이다. 게다가 검찰권력의 남용을 제어하는 개혁방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검찰은 개혁의 무풍지대에 남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불신과 검찰 개혁의 여망을 무시하는 대단한 강심장들이다.


전체 약 2200명. 한 줌도 안되는 사람들이 5000만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온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검사들의 존재는 대단하다. 과연 누가 이런 존재를 만들어냈는가? 여기서 우리는 현재의 검찰제도를 탄생시킨 ‘1954년 형사소송법’을 주목해야 한다.


1954년에 제정된 형사소송법이 바로 ‘제왕적 검찰제도’를 탄생시켰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손에 틀어쥔 검찰 조직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사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은 수사·기소할 수 있지만, 반대로 검사들 스스로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수사·기소받을 염려가 없는 막강한 위치에 자리 잡았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당시 엄상섭 의원이 기소권을 가진 검찰에 수사권까지 주면 ‘검찰 파쇼’가 우려된다고 했던 그 염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일체의 외부 견제를 거부하는 검사들의 특권의식, 기억에 생생하게도 10여년 전 대통령에게까지 대들던 젊은 검사들의 거만함은 모두 이런 권력의 독점에서 나온다. ‘감히 누가 우리를 건드려!’ 웬만한 비리를 저질러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검사들의 자신감도 바로 권력의 독점에서 나온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검사를 두려워하지만 검사는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집권세력은 이런 검사들을 정국 장악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검찰 장악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보은인사 또는 찍어내기식 인사가 주된 방법이다.


‘정권의 시녀’ 검찰의 탄생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다. 정치권력과 국가기관이 개입된 대형 비리나 국기문란사건이 터져도 검찰이 나서서 진실을 덮으면 아무 일도 없던 것이 되어 버린다. 대신 충성을 다한 검사들은 높은 자리로 보답을 받는다.


국민들은 정의와 진실을 원하지만 검사들은 집권세력의 연장과 자신들의 출세를 추구한다. 온갖 비리·부패가 만연해도 모두가 검사들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검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만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과연 이 땅의 주인이 국민인지 검사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검찰 공화국’이라는 말이 통용될까. 우리 민주주의의, 우리 법치주의의 민낯이다.


모든 민주국가는 권력을 나누어 권력 상호 간에 견제와 감시를 하도록 하고 있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이 역사가 증명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제왕적 검찰권력을 탄생시킨 1954년 형사소송법의 체제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 검사들의 잇따른 비리와 추문, 권한남용은 이 독점체제가 한계에 도달해 있다는 확실한 증거들이다. 개혁방안들은 이미 여럿 제시되어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는 대형 비리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독점을 깨뜨리고 검사들의 비리도 예외 없이 형사처벌의 대상에 올려놓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개혁방안이다. 전국 18개 검사장 직선제는 거대한 단일 검찰권력을 18개의 작은 검찰청으로 쪼개는 동시에 주민들이 직접 검찰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개혁방안이다. 보다 근본적인 방안은 큰 틀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권력의 남용을 막는 것이다.


60여년 전 엄상섭 의원도 우리 형사소송체계에서 장기적인 역할 모델을 검찰은 기소, 경찰은 수사를 담당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는 현재 모든 문명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글로벌 체제이다. 검찰 쇄신의 근본적인 해답은 1954년 탄생한 검찰의 독점체제를 깨뜨리는 데 있다. 부디 이 나라를 국민이 주인인 나라로 되돌리자. 20대 국회가 검찰 개혁방안의 입법화에 적극 나서주기를 바란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05211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