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칼럼> 송기호 - 대법도 인정한 개성공단 가치

irene777 2016. 9. 27. 15:22



[세상읽기]


대법도 인정한 개성공단 가치


- 경향신문  2016년 9월 7일 -





▲ 송기호 변호사



무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30일, 대법원이 주목할 만한 판결을 냈다. 개성공단 기업 사이에서 임대차 분쟁이 있었는데, 헌법의 ‘자유시장경제질서’에 기초한 경제활동이므로 한국 법원에 재판관할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애초 사건은 개성공단 현지 기업들끼리 임대해준 개성공단 현지 건물을 둘러싸고 생겼다. 북한법에 따라 설립한 회사 사이에서 그것도 북한 지역의 건물을 놓고 발생한 분쟁이었다. 북한법상의 회사이다 보니 회사 대표 직함도 ‘대표이사’가 아니라 ‘기업 책임자’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 자신의 관할이 있다고 했다. 그 주된 이유로 개성공단 현지의 기업이 한국 헌법에서의 자유시장경제질서에 따라 경제활동을 했다는 점을 밝혔다. 이 판결은 의미가 크다. 대법원은 개성공단이라는 북한 지역에서 한국 헌법 경제질서가 작동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실제로 그동안 법원은 개성공단에 있는 부동산을 대상으로 한 경매사건에서 개성공단을 방문해 부동산에 대한 조사와 경매를 진행했다. 이처럼 개성공단이라는 북한 지역에서 한국의 경제질서가 자리 잡고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이는 단지 공단 가동 중단이라는 물리적 손실만이 아니다. 북한 지역에서 작동 중이던 한국 경제질서의 종언을 의미한다. 이 상실을 감수하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개성공단을 폐쇄했지만 북한의 핵 기술 고도화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개발에도 성공했다.


중국을 북한 제재 틀 깊숙이 끌어들이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실패했다. 오히려 중국은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긴장 격화에 비판적이다. 개성공단 폐쇄는 남북 사이의 신뢰 문제에 큰 손상을 입혔다. 개성공단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이 얼마나 북한의 핵 개발에 사용되는지 정부 스스로도 정확한 자료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해 버렸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개성공단 폐쇄가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마치 북한이 곧 붕괴할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희망과 현실은 다르다.


북한의 붕괴라는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일당독재의 종식을 의미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북한에 사는 약 2500만명의 사람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들은 다른 정당에 투표를 함으로써 일당독재를 종식시키는가? 북한에는 인구수로 세계 50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정부가 스스로 북한 붕괴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면, 북한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를 들어 보지 못했다.


북한 붕괴를 추진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을 메시아를 기다리는 지하교인으로 볼 뿐이다. 2500만명의 지하교인이라는 것은 얼마나 관념적인가? 1970년 3월19일, 통일 전 동독을 처음 방문한 구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의 숙소 앞에 수만명의 동독 사람들이 운집했다. 동독 경찰이 제지했지만 그들은 “빌리!” “빌리!”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브란트는 환영 인파를 진정시키기 위해 숙소 창문을 열고 두 팔을 올리고 내리는 동작을 해야 했다. 사실상 이때 독일의 통일은 시작됐다.


한반도는 독일과 달리 남과 북 사이에 내전이 있었다. 잔혹한 살상이 있었다. 따라서 남과 북의 통일은 더욱 신중하며 매우 평화적이며 아주 장기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성공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매우 필요하다. 북한 사람 2500만명이 한국을 대안으로 생각할 정도로 한국의 경제질서가 더 성숙해야 한다. 그리고 개성공단을 통해 이 성숙한 경제질서를 북한 사람들이 접촉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도 북한 사람들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뜨거웠던 여름 대법원이 인정한 개성공단의 가치다. 개성공단 가동 재개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072114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