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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민아 - 노상강도와 모래시계 검사

irene777 2016. 9. 27. 15:03



[여적]


노상강도와 모래시계 검사


- 경향신문  2016년 9월 9일 -





▲ 김민아

경향신문 논설위원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홍준표 경남지사가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8일 홍 지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물론 1심 판결이다. 헌법 제27조 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홍 지사에겐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헌법적 권리가 있다.


지금 홍 지사는 이 같은 권리를 마음껏 향유하고 있다. 그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을 떠나면서 “노상강도를 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기자간담회에서 검찰과 재판부를 비판하더니 페이스북에서도 불만을 쏟아냈다. “결론을 정치적으로 정해놓고 끼워맞추기 식으로 한 판결은 승복하기 어렵다”(8일 오후)는 글이 시작이었다. 한 시간 뒤쯤엔 “돈을 어떤 경로든 갖다주었다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은 참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는 글을 올렸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노상강도’ 발언을 비판하자 “법원을 노상강도로 비유한 것이 아니고, 검찰과 법원이 노상강도 편을 들어 수사와 재판을 한 것을 비판한 것”이라며 “말귀도 못 알아듣고 함부로 말하는 나쁜 버릇은 고쳐야 올바른 정치인이 된다”(9일 낮)는 훈계를 늘어놓기도 했다. 노상강도 발언이 사법부 모독으로 비치자 뒤늦게 해명에 나선 듯하나 군색하다.


앞서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홍 지사는 2011년 당 대표 경선 때 낸 기탁금 1억2000만원의 출처를 두고 ‘아내의 비자금’이라는 주장을 폈다. 구차한 변명은 의혹만 증폭시켰다. 첫 재판에 출석했을 때는 껌 씹는 듯한 모습이 포착돼 도마에 올랐다. 그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먹는 금연보조제”라고 주장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인 중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됐던 홍 지사는 자신이 ‘친박’이 아니어서 희생양이 됐다는 억울함이 큰 것 같다. 다른 인사들이 대부분 면죄부를 받았으니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방어권 행사를 탓할 생각도 없다. 다만 현역 도지사이자 법조인답게 최소한의 품격은 지키기 바란다.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며 정계와 검찰 실력자를 줄줄이 구속했던 ‘모래시계 검사’의 기개는 다 어디로 갔나.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092029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