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칼럼> 비정규직의 죽음, 벌써 아무도 말하지 않게 되었다

irene777 2016. 10. 13. 16:09



비정규직의 죽음, 벌써 아무도 말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감성’이라는 것


진실의길  김갑수 칼럼


- 2016년 9월 19일 -




추석 명절 직전인 9월13일 경북 김천 인근에서 오밤중에 고속철로를 수리하던 두 사람이 참변을 당했다. 죽은 이 둘 다 철도공사가 ‘외주’를 준 비정규직이었다. 사고 때까지 현장 노동자와 공사 사이에 아무런 사전 연락이 없었는데 이것은 중간에 외주업체가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의 두 사람은 경주 지진으로 지연된 고속열차가 그 시각에 지나간다는 ‘알림’을 받지 못한 것이다.




▲ 사진 출처 : 김천소방서 제공



불과 100일 전인 5월28일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19세 비정규직이 처참하게 죽어야 했던 원인도 똑같은 것이었다. 이 사건은 그대로 묻힐 뻔했지만 그나마 가방 속의 컵라면이 인터넷에 뜨게 되자, 기레기들은 선정적인 소재로 보아 보도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이 사건도 다른 사건에 비해 조금 오래 끌었을 뿐 역시 없었던 일처럼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비정규직 사고는 이제 관심은 물론 흥밋거리도 되지 않는단 말인가? 9월3일 서울 지하철 성수역과 용답역 사이의 장안철교에서 보강 공사를 하던 20대 비정규직이 추락해 또 숨졌지만 이제는 아예 아무도 모른다. 한 두 언론이 철교 아래 분향소 표정을 기사화했을 뿐 대다수 기레기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철교 기둥에 “청년의 죽음을 애도해 주세요”라고 써 붙여 놓은 글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기레기들은 리바이벌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사고 역시 구의역 사고처럼 외주가 낳은 참극이었다. 일시적인 그리고 지극히 센티멘털적인 스마트폰의 감성적 표출만으로는 결코 현실을 바꿀 수 없다.(이상 손석춘 칼럼 참조) 세월호… 노란리본으로 상징되는 그 감성은 또 어떠한가?




[시] 유리 닦는 사람


- 성석제 -



그는 한 집안의 기둥이었고 서른 살 먹은 남자, 

고층 건물의 유리를 닦고 

수당을 받기 위해 더 높은 곳을 원했다. 

머리가 짧고 왼손잡이였던 사람,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마에 손을 얹고 쳐다볼 때 

그도 땀을 닦다가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다.


그가 떨어진 것에 대하여 

안전벨트 회사에서는 

이중고리가 한꺼번에 풀렸을 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가 다니던 용역회사에서는 흔치 않은 사고라고 말했다. 

자살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말했고 

그럴 수도 있겠지, 누군가 끄덕였다. 

여동생은 그건 보험회사의 억지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오랜만에 모두 모였다. 

동료들은 이번 기회에 수당을 올리자고 수군거렸다.


이중의 안전고리가 풀리고 

그가 떨어진 건 사실이다. 

몸을 트는 순간, 세상이 문득 기울고 

한순간 완전히 뒤집힌 것도, 

바늘이나 쇳덩이나 떨어지는 속력이 같은 것도, 

그가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던 것도, 

시계처럼 튕겨 부서진 것도 사실이다.


그가 죽은 날은 기념일도 휴일도 아니었다. 

어디선가 아이들이 태어나고 

장례식이 치러졌다. 

월급쟁이들은 출근을 하고 

신호등은 규칙적으로 불빛을 바꾸었다. 

포장도로는 딱딱하고 동상은 빛났다. 

그는 검토가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죽었기 때문에 

의사는 천천히 걸어왔다. 

구경꾼이 모여들고 아이들은 뒷골목으로 쫓겨났다.


검증이 시작되었다. 

의사는 맥박을, 

경찰은 시간을, 

보험회사는 사고를, 

용역회사는 위험수당을, 

동료들은 스스로의 손금을, 

가족들은 그의 푸른 나이를, 

온도계는 겨울을 확인했다. 

그들은 논의하고 결정지었다. 

그는 죽었다. 

동료들은 재빨리 돌아갔고 

가족들은 천천히 돌아갔다.


유리는 맑거나 흐리거나 유리이다.


고층 건물의 어두운 유리창을 통해서 

밖을 내다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들여다보기 위한 것도 아니다. 

말하기 위한 것도 

듣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스스로 말할 수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게 된 

유리 닦는 사람을.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c_booking&uid=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