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인공지능 시대와 케인스의 예언
- 한겨레신문 2016년 9월 19일 -
▲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기술진보로 인해 많은 일자리들을 일련의 반복적인 직무들로 나눌 수 있게 됨으로써 기계가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육체노동자의 일자리가 문제였지만 이제는 한층 똑똑해진 기계가 정신노동자의 인지적 활동도 대신하고 있다. 법률 보조원, 텔레마케터 등의 일자리는 물론 시장분석가나 회계사의 일자리도 거센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기술진보는 일자리를 파괴하며 사회의 안정성을 뒤흔드는 위협 요인으로 늘 거론되었다. 그러나 그간의 기술진보는 없애버린 일자리보다는 새롭게 창출한 일자리가 더 많았다. 기업들은, 자동화에 따른 비용 절감과 가격 인하로 수요가 커진 상황에서, 생산공정의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직무들에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했으며, 신기술에 힘입은 새로운 산업도 출현했다.
20세기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이러한 변화에 낙관적이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기술적 실업’ 문제는 해결될 수 있고, 기술진보는 경제성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었다. 케인스는 1930년에 발표한 <우리 후손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향후 100년 후의 소득수준은 4배에서 8배 정도 높아지고, 주당 15시간만 일하더라도 살아가는 데 충분할 것이라며, 100년 안에 인류를 괴롭혀온 경제적 문제로부터 해방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경제성장에 대한 예언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소득수준이 여덟 배 개선된다는 것은 연평균 2.1%의 성장률을 의미하는데, 지난 80년간 선진국들의 성장률과 일치한다. 반면, 노동시간에 대한 예언은 혼란스럽다. 세계적으로 노동시간은 줄지 않고 있으며 특히 우리의 경우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라는 점을 고려하면 시대착오처럼 보인다. 그러나 수백년에 걸친 자본축적과 기술진보 그리고 성장중심주의 덕분에 절대적 필요를 충족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생계유지에 필요한 일은 최소한으로만 하고, 남는 시간은 보람이 크고 의미있는 일에 쓰자는 게 그의 진의였다.
물론 경제성장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 사회는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분투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고 있으며, 한 차원 높은 물질적 진보를 방해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절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준을 뛰어넘어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제성장은 행복을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의 잠재적 역량을 한껏 발휘함으로써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완성시켜 가는 ‘좋은 삶’(good life)을 살아갈 때 가능하다.
케인스의 희망 섞인 예언이 현실화되려면 임금의 극단적인 격차를 줄여야 하며 노동의 가치에 대한 사회의 평가도 더 올라가야 한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나 생활임금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기본소득도 중요한 몫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도 유토피아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 똑똑한 기계의 도움을 받아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을 더 잘 찾아나설 수 있으며, 가치있는 삶을 타인과 슬기롭게 나누고 협력하는 방법도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시민의 ‘지배자’가 아니라 충직한 ‘하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어느 분야에 어떤 목적과 어떤 속도로 사용할 것인지, 그 경제적 열매를 어떻게 나눌지에 관한 사안들을 극소수의 천재나 기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17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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