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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종구 - ‘도덕 금치산 정권’이 지휘하는 ‘국민 바른 생활 운동’

irene777 2016. 10. 27. 15:51



<김종구 칼럼>


‘도덕 금치산 정권’이 지휘하는

‘국민 바른 생활 운동’


- 한겨레신문  2016년 10월 10일 -





▲ 김종구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호화 해외 출장, 초저금리 황제 대출, 아들의 의경 꽃보직 특혜….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도덕성 위반 죄목들 가운데 일부다. 세 사람 ‘죄’의 경중과 우열을 한번 따져보려다 그만두었다. 그런 평가 자체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송 전 주필은 어쨌든 자리에서 물러나 언론계를 떠났다. 그러나 다른 두 사람은 아직도 건재를 과시한다. 권력이 ‘부패 언론’이라고 힐난한 신문사는 그나마 최소한의 조처라도 취했으나 정작 그 권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부패 언론’보다도 못한 이 정권을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옳은가.


지금 대한민국은 김영란법 시행이라는 미증유의 도덕적 실험과 과거 군사정권을 뺨치는 비도덕적 정권의 얼굴을 동시에 목격하고 있다. 3만원 이상의 식사도 엄금하는 마당에 다른 한편에서는 비리·특혜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건의안마저 철저히 깔아뭉갠다. 사회에 맑은 강물을 흐르게 하자는 노력의 건너편 쪽에는 정권이 저지른 파렴치한 돈의 분탕질로 악취가 진동하는 흙탕물이 넘쳐난다. ‘교훈 드라마’와 ‘막장 드라마’의 동시 상영은 참으로 기괴하고 몽환적이다.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직결된 사안에서 이 정권은 언제나 굼벵이처럼 느려터지고 우왕좌왕, 갈팡질팡을 거듭했다. 하지만 돈의 갈퀴질에는 매우 민첩하고 손발이 척척 맞았다. 세월호 참사 때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던 청와대도 기업의 돈 끌어모으는 일에는 맹렬히 총사령탑 노릇을 했다. 그런 기민성과 용의주도함을 정당한 국정운영에 10분의 1이라도 발휘했더라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중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미르 재단 설립이 시한에 쫓기듯 급박히 추진된 배경에 박 대통령의 채근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추론이다. 한-중 문화교류에 대한 중국의 대규모 펀딩을 기대한 박 대통령이 리커창 중국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청와대 참모진에 “준비 잘 되고 있죠”라고 묻자 참모들이 화들짝 놀라 재단 설립을 서둘렀다고 <한겨레>는 보도했다. “미르는요?” 하는 식의 박 대통령 특유의 짤막한 물음 하나만으로도 청와대 참모들은 뜨거운 철판 위의 콩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는 7시간이나 실종됐던 대통령도 이 대목에서는 실로 놀라운 영도력을 발휘했다.


재벌에 대한 역대 대통령들의 강압적 태도를 한 기업인은 이렇게 정리했다. ‘일언지하’(박정희) ‘좌지우지’(전두환) ‘조삼모사’(노태우). 대우그룹 마지막 구조조정본부장을 지낸 김우일씨가 쓴 비망록 가운데 일해재단 설립 모금과 관련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빨리 50억원을 들고 이 명함에 쓰여 있는 데로 가서 전달하시오!” 권력에 돈을 갖다 바치라는 재벌 총수의 은밀한 지시는 단지 과거형이 아니었다. 그러면 박 대통령에게 어울리는 가장 적절한 한자성어는 무얼까. 불문곡직 가렴주구?


다시 김영란법으로 돌아가 보자. 이 법은 국회가 만들었지만 시행의 진두지휘는 정부가 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권익위원회를 앞세워 시시콜콜한 대목에까지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다. ‘유권’이라는 말은 단지 ‘구속력’의 뜻만 내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법의 시행자가 도덕적 권능과 권위의 기반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유권’이기도 하다. 그 대목에서 이 정권은 ‘무권 정권’을 넘어 도덕성 심신 상실 상태에 있는 ‘도덕적 금치산 정권’에 해당한다.


언론인들 사이에 ‘공분’의 대상으로 떠오른 공익 언론재단의 언론인 연수지원 문제에 대한 권익위의 해석만 해도 그렇다. 합법적인 공익재단의 언론 지원 활동을 차단한 법률 해석도 허점투성이지만, 그런 사고의 밑바탕에 깔린 기자들에 대한 불신은 더욱 불쾌하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국가의 돈으로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돌아온 수많은 공무원은 도대체 선진국에 나가서 배운 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다른 것은 몰라도 공직자는 정권이 아니라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가슴에 새기고 돌아왔어야 옳다. 하지만 지금 각 정부 부처 사무실마다 나부끼는 구호는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다. 청와대 총연출에 공무원들까지 대거 조연으로 가세한 ‘미르 게이트’ 막장 드라마가 이를 웅변한다. 도덕적 금치산 정권이 지휘하는 국민의 바른 생활 운동,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물구나무선 풍경이다.



- 한겨레신문  김종구 논설위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49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