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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검, 산케이의 박근혜 명예훼손 입증 어렵다”

irene777 2014. 10. 11. 05:57



법조계 “검, 산케이의 박근혜 명예훼손 입증 어렵다”


검찰기소 놀랐다 

“대통령 사생활이라 볼 수 없어…자초한 책임”

“아예 명예훼손죄 없애야”


- 미디어오늘  2014년 10월 10일 -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과 관련해 측근 ‘정윤회 밀회설’을 보도한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지국장을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 것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와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고의 ‘공인’ 신분인 데다 의혹의 대상으로 삼았던 ‘7시간’이 공무를 봐야 할 시간이며, 국민 수백명이 죽어가고 있던 때였다는 점에서 ‘정윤회와 만났다는 풍문’을 언급한 산케이 기사만으로 명예훼손의 고의성을 찾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한 가토 지국장이 정윤회와의 관계에 대해 주로 인용한 조선일보 칼럼은 놔둔채 산케이만 처벌하겠다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이유로 헌법가치에 반해 대응하는 검찰의 행위를 묵인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이번 검찰의 기소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편으로, 이참에 명예훼손을 범죄화하는 제도를 아예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2008년 MB정부 경제정책을 비판 글을 게재한 이유로 구속기소(전기통신법상 허위사실 유포혐의)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이른바 ‘미네르바’ 사건의 변호인인 박찬종 변호사는 10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설마 기소까지 하겠느냐고 생각했으나 진짜 기소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불확실한 루머를 보도해 무책임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본의 주요언론사 지국장을 출국금지에다, 기소까지 할 줄 몰랐다”며 “이 사건은 기소 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박 대통령 명예훼손의 근거로 든 ‘허위사실’ 여부에 대해 확증을 내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당일 청와대 경내에 있었으며, 정윤회씨도 청와대를 출입한 일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 “답변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답을 피했다. 검찰은 조사방식도 청와대 관계자를 직접 조사하지 않은 채 서면조사로 대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전, 박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 기사를 전재했다가 검찰에 기소된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의 명예훼손 사건 변호인인 김인숙 변호사는 1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검찰이 내놓은 것만으로는 허위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문제의 7시간은 사생활이라 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CCTV와 같이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는) 객관적 증거가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외국 언론을 정말 기소할 작정이었다면 검찰에서 더 확실하게 수사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 지난 9일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불구속 기소 소식을 전한 

요미우리신문 등 주요 일본 일간지  @연합뉴스

 


이광철 법무법인 동안의 변호사는 1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산케이의 기사 내용도 정윤회와 의 밀회설만을 단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조선일보를 인용하면서 서울발로 국내 정치상황이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앞당길 것 같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기사에 설령 소문이나 유언비어를 담는다 해도 마치 소문이나 유언비어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일체 언급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표현의 자유 봉쇄행위”라고 지적했다.


박찬종 변호사는 “현재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일본 뿐 아니라 서방언론, 유럽언론의 경우 현직 대통령을 비난하는 정도를 넘어 성적으로도 조롱한다”며 “심지어는 대통령의 성기를 갖고 희화화하는 프로그램도 버젓이 방송될 정도”라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다소 사실관계가 다르더라도 ‘박 대통령의 7시간’ 관련 루머는 당시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당사자와 정부관계자 확인 등 조치없이 증권가 정보지 및 정치권 소식통을 인용했다’, ‘23년차 기자이며 한국에도 4년 살았던 사람’이라고 밝혀 산케이 지국장의 ‘고의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역시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김인숙 변호사는 “조선일보 칼럼을 그대로 인용했는데, 내가 볼 땐 조선 칼럼이 더 심하다”면서 “정윤회씨의 이혼사실과 ‘혼인중 있었던 일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이혼 조건까지 거론한 것을 읽으면 뭘 상상할 수 있겠느냐. 하물며 이 정도의 내용을 인용해 의문이라고 보도한 것만 죄를 묻고, 정작 첫 발표물인 조선일보를 놔두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조선일보 칼럼이 나왔을 때는 아무 언급없이 방치해뒀다가 산케이가 이를 인용하니 문제를 삼은 것도 일관성이 없다”고 말했다.


박찬종 변호사는 “명예훼손의 고의가 있다고  입증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며 “정윤회 밀회설이 당시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고 전했다. 이광철 변호사도 “산케이 지국장의 글은 국내 정치상황에 대해 정치적 논평을 하는 취지로 쓴 글이기 때문에 허위사실 유포로 명예훼손을 하려 했다는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당일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이 전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도 검찰에겐 불리한 대목이다. 공인으로서 최고의 지위에 있는 국가원수를 비판하는 것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것과 관련해 그 기준이나 판례조차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여성 대통령’에게 부적절한 남녀 관계가 있는 것인양 허위로 적시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여성 대통령’과 ‘부적절한 남녀 관계’를 유독 강조했다. 여성 대통령이니 부적절한 루머로부터 더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처럼 읽히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 김인숙 변호사는 “핵심은 박 대통령의 남녀관계라거나, 이를 알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뭘했는지, 그 때까지 잠자고 있었는지, 서류만 봤는지 등에 대한 것”이라며 “이것이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아무도 이를 모르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광철 변호사는 “이 사건이 대통령 명예훼손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지 법리적으로 따져볼 수도 있지만, 박 대통령의 7시간은 엄연한 대통령의 근무시간이었다”며 “법리적인 논의를 끌어올 필요도 없이 공인의 공무에 대한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87년 이후 대통령에 대해 명예훼손했다고 기소한 경우는 처음 본다”며 “박 대통령 자신이 명예훼손됐다고 생각하면 당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떳떳하게 나와서 밝히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박찬종 변호사는 “내 기억에도 대통령을 명예훼손했다고 재판까지 갔던 사건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며 “공인이라도 보호돼야 할 사생활의 영역에 해당되는지, 고의가 있었는지 등을 따져보기 전에 이 사건은 사생활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검찰이 대통령의 명예를 보호해줘야겠다고 신경쓰다 보니 언론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의 국격이 손실되는 사태를 만들어버렸다”고 비판했다.


또한 검찰이 가토 산케이 전 지국장을 기소할 때 ‘대통령과 청와대가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방을 설명하지 않아 의문을 자초한 책임’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점도 무리한 기소라는 쪽에 힘을 싣고 있다. 


박찬종 변호사는 “보좌진과 대통령 당사자 책임이 크다”며 “청와대 경내에만 있으면 집무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몇시에 어디에 있었는지 밝히지 않아 루머를 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광철 변호사도 “우리 검찰이 그런 청와대 책임론을 판단할 의지가 있었다면 아예 기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박찬종 변호사  @연합뉴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명예훼손 사건을 형사범죄로 다루고 있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광철 변호사는 “명예훼손은 비범죄화하는 것이 맞다”며 “손해배상 등 민사적 제재로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명예훼손‘죄’는 민주주의 원리에 심각한 장애가 되기 때문”이라며 “명예훼손 사건이 ‘공익의 목적’일 경우 위법성 조각이 되는데. 그 판단은 사법부의 영역으로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공론의 장에서 견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막히면 검찰로, 법원으로 달려가는 경향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이렇게 되면 공론의 장 기능은 멈추고 형벌권이 발동돼 민주주의 원리인 표현의 자유가 왜곡되고, 사상의 자유 시장이 성숙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김인숙 변호사도 “명예훼손 범죄가 너무나 만연해있다”며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등 공인 또는 공적 성격이 있는 사회지도층이 명예훼손 소송을 남발해 감시와 비판을 막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찬종 변호사도 “세상은 법률만 갖고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다”면서 “인터넷 상에서 중상모략하는 것은 개선해야 하지만, 자제심을 통해 공리(公利)를 만들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