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구조실패의 원인, 그 감춰진 진실은? ①
사고 당일, 겨우 10명에 불과했던 잠수인원과 해경의 거짓말
- 정서각 / 서프라이즈 2014년 10월 14일 -
사고 당일, 겨우 10명에 불과했던 잠수인원과 해경의 거짓말
국정감사가 벌써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첨예하게 부딪치는 이슈가 없었던 탓인지, 지금까지는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주부터는 분위기가 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15~16일 이틀에 걸친 국정감사 일정 속에, 해수부를 비롯하여 해경, 선박안전기술공단, 한국해운조합, 한국선급 등 세월호와 관련된 기관들이 대거 감사 대상에 포함된 관계로, 여·야간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실한 자료제출과 증인출석 거부로 인해, 국정조사는 별다른 소득도 없이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고, 청문회는 아예 처음부터 열리지도 못했다. 속 시원한 진상규명작업은 대체 언제쯤이나 가능할지,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장담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한 지난 10월 6일의 검찰 수사결과 발표 역시, 진상규명과는 전혀 거리가 먼 ‘전형적인 꼬리자르기식 수사’라는 유가족들의 비판만을 낳았다.
우리가 반드시 밝혀내야 할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지금까지 숱한 거짓들 속에 가려져왔던 그 ‘진실’을 향해, 이제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가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발표되었던 여러 자료들이나 언론기사들을 분석함으로써, 쟁점이 될 사안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았다.
사고 당일 투입된 잠수인원, 겨우 10명에 불과
우선 사고 당일인 4월 16일, 사고지역에 집결해 있었던 정부의 잠수요원은 대체 몇 명이나 되었을까?
발표된 공식 자료들을 통해 확인한 바, 해군이 투입한 인원 42명과 해경의 인원 118명, 총 160명이 사고 당일 세월호 주변에 집결했던 것으로 파악이 된다. ( 해경은 사고 당일, 이 160명 전부를 객실 등 생존자 확인을 위한 수중 수색작업에 투입했던 것으로 보고를 한바 있다 )
▲ 4월16일 국방부 보도자료 - 14시 기준 군 지원작전 세부현황. 출처 : 국방부
▲ 4월16일 16시31분 해경 본청 상황보고서 제 6보. 출처: 해경
또 사고 당일 17시 10분경, 당시 김수현 서해지방경찰청장은 “2인 1조로 40~80여명이 선체 내부진입 시도 중”이라는 사고 현황 브리핑을 했다.
▲ 4월16일 17시13분, 김수현 서해지방경찰청장 상황브리핑. 출처: TV조선 동영상 캡처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사고 당일 실제 투입된 잠수인원은 모두 합쳐봐야, 겨우 10명에 불과했다.
그 근거는 바로, 해경이 국정조사 기간에 국회에 제출했던 잠수 로그 북(Log Book)이다. ( ‘로그 북’이란 다이버들이 1회 다이빙을 하고 나면, 곧바로 기록으로 남기는 잠수일지를 말함 )
▲ 해경이 국회에 제출한 로그북 중 4월 16일부분. 출처: 해경
로그 북에는 사고 당일 오후 13시부터 18시 35분까지, 총 8회의 수중수색 작업을 실시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부 언론에서 총 16명이 잠수를 했던 것으로 보도했던 내용과는 달리, 해경의 한모, 최모 대원의 동일인 중복횟수를 제외하고 나면 실제 잠수인원은 10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나마 입수시간은 매회에 걸쳐서 겨우 10여 분 남짓, 총 8회 가운데 5회는 “강한 조류로 퇴수”라고 기록되어 있고, 심지어 15시에는 입수와 출수 시간이 15시 00분으로 동일한 경우마저 있었다. 그저 물속에 들어갔다 곧바로 나왔다는 얘기다.
다시 정리를 하면, 해경의 잠수인원 118명 가운데 6명, 그리고 해군의 42명 가운데 SSU 대원 4명을 빼고는 전혀 잠수작업에 투입된 인원이 없었고, 그나마 제대로 된 수색작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조류 데이터에 대한 해경의 납득하기 힘든 변명
“처음에 저희는 정확한 사고현장의 조류 데이터가 없었다. 당시 현장의 데이터는 갖고 있지 않았고, 현장에서 떨어진 곳에 관한 것이어서 실제 데이터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지난 7월 11일,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기관보고가 국회에서 열렸던 당시, 구조대원을 사고 당일 많이 투입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한 김석균 해경청장의 변명 내용이다.
과연 이 말은 사실일까?
그 동안 여러 언론매체들이 보도를 통해, 해경의 ‘조류오판’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었다. 물살이 잠잠한 정조기가 아닌, 오히려 물살이 강할 때에 잠수요원들을 투입하는 바람에, 구조작업에 실패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해경은 지난 5월 8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을 한 바 있다.
▲ ‘조류오판’에 대한 해경의 보도해명자료. 출처: 해경
그 내용을 보면, “해경은 사고초기 수중수색 가능시간 판단을 위해 해양조사원에서 발간한 조류표( 맹골수도 )와 해군의 자체분석 조류표를 참고하는 한편, 사고현장에서 500m 떨어진 경비함정에 설치된 선속계로 실시간 조류속도를 측정하면서 수중 수색작업을 실시하였음”이라는 설명이 담겨 있다.
“처음에 사고현장의 조류 데이터가 없었다.”는 해경청장의 변명과는 전혀 상반되는 내용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수부가 4월 18일에 발표했던 ‘여객선 세월호 침수·전복사고 조치사항 및 계획’이라는 자료를 보면, 4월 18일 15시부터 해양조사선 ‘바다로 1호’가 사고해역에 배치되어, 조류 예측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 조류관측과 관련한 지원 내용을 담은 4월 18일 해수부 보도자료. 출처: 해양수산부
문제는, 잠수 로그 북에 나타난 ‘강한 조류로 인한 퇴수’가 4월 16일 5회, 17일 6회, 18일 6회, 19일 9회, 20일 5회, 21일 3회, 22일 4회 등 총 38건이나 발생했다는 점이다.
해양조사선 ‘바다로 1호’에 의한 조류 예측정보가 제공되기 시작한 18일 이후에도 그런 상황이 꾸준히 지속되었던 것이다.( 6월 23일까지 있었던 총 49회의 ‘퇴수 및 상승’ 기록 중 대부분이 사고 직후 1주일 사이에 발생 )
숱한 의혹들 중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의 하나가, 바로 이 잠수사 투입에 관한 부분이다. 당시 투입 시간을 실질적으로 결정하고 잠수 작업을 총괄 지휘했던 책임자가, 직접 국정감사장에 나와서 해명을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 이틀째인 4월 17일에 진도체육관을 방문했을 때, 해경청장은 대통령 바로 옆에서 “현재 인력을 잠수사 500여 명을 투입하고 있습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 4월17일, 잠수사 500여명 투입하고 있다는 해경청장. 출처: MBC 뉴스동영상 캡처
해경청장은 대통령마저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을 속으로 했던 셈이다. 참으로 ‘간 큰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발 내 자식들 살려 달라”며 눈물 흘리고 애원하는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그토록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던 해경청장. 고함과 항의가 터져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몽준 전 의원의 막내아들과 일부 보수인사들은 이 장면을 놓고, 희생자 가족들에게 ‘미개’하다는 표현을 썼다.
과연 누가 미개한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인가? 아니면 바다 속에 생떼 같은 자식들을 두고, 발만 동동 구르며 절규하는 희생자 가족들인가?
300명이 넘는 희생자들이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보며 온 국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던 그 무능한 정부가, 이제는 유가족들을 오히려 적대시하며 외면하고 있다.
이 참혹하고 몰염치한 ‘야만의 시간’들은 하루라도 빨리 끝이 나야 한다. 진실의 문을 두드리는 모두의 노력이 반드시 함께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출처 :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478&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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