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6개월…국가는 면죄부 주기 바빴다
법적책임 물은 고위직은 해경 차장뿐
청와대 상황실 책임자 ‘장군’으로 승진
청해진해운 비호세력 하나도 못 밝혀
- 한겨레신문 2014년 10월 14일 -
▲ 지난 4월 16일 저녁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7㎞ 해상에서
침몰하고 있는 여객선 세월호(6825t급) 부근에서 해경과 해군, 민간선박 등이 불을 밝힌 채
실종자 구조와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오는 16일이면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261명을 포함해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꼭 6개월을 맞는다. 참사 이후 온 국민이 슬픔과 분노의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지난 반년 동안 국가가 보여준 책임감과 성찰 능력은 참사가 일어난 원인만큼이나 ‘후진적’이었다. 지난 6개월의 악몽 같은 시간을 버텨냈던 유가족들은 14일 “국가는 면죄부를 주기 바빴고, 우리의 의문에 누구 하나 나서 답해주지 않았다. 이젠 잊힐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크다. 참사 전과 후가 달라질 거라고 했던 약속을 제발 기억해달라”(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고 호소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최근 정부는 참사 6개월을 앞두고 그동안 진행했던 진상규명 및 처벌·문책 절차를 서둘러 끝냈다. 검찰이 지난 6일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감사원은 이에 발맞춘 듯 징검다리 연휴 중인 10일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의 무능한 대처로 300여명이 눈앞에서 희생된 참사에 대해, 공권력은 56명을 기소하고 50명의 징계를 요구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이들 중 대부분은 선원이나 업체 임직원 및 하위직 공무원들이었다. 법적 책임을 추궁당하게 된 고위직은 1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해양경찰청 차장(치안정감)이 유일하다.
법적 책임을 입증하긴 어렵더라도, 국가기관의 무능함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감사원 감사 역시 해경 외엔 국방부와 청와대 등 주요 기관에 대한 감사에 사실상 손을 놓았다. 사고 직후 청와대 내부의 보고 체계와 부실한 대응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문제없음’이라고 공개적인 면죄부를 줬다. 참사 당일 해경 상황실에 “다른 거 하지 말고 (보고용) 영상부터 바로 띄우라”고 닦달한 청와대 상황실 책임자는 최근 소속 부처인 국방부 인사에서 ‘군 인사의 꽃’으로 불리는 ‘별’을 달고 장군으로 승진했다.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82일째인 14일 오후 서울광장 세월호 합동분향소에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노란 종이배가 놓여 있다. 종이배 뒤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염원하는 국화꽃이 노란 리본 모양으로 놓여 있다. 신소영 기자
이뿐 아니다. 정부는 ‘국회 차원의 정쟁’을 핑계삼아 진상규명을 방치해왔고, 여론의 ‘망각 효과’에 기대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기성세대의 잘못을 덮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34일 만에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청해진해운 성장 과정의 각종 특혜와 민관 유착”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한 어이없는 수사와 사망 소식만 있었을 뿐, 지금껏 그와 관련된 특혜나 비호세력 어느 것 하나 밝혀진 게 없다. “관피아 척결”은 구호에 그쳤고, 세월호를 침몰시킨 뿌리깊은 민관유착 역시 ‘발본색원’은 고사하고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참사 이후 ‘국가대개조’를 앞세운 박 대통령의 인적쇄신은 두 번의 총리 후보자 낙마에 이은 ‘전임 총리 유임’으로 빛이 바랬다. “유족들의 여한이 없게 하겠다”던 박 대통령의 약속 역시 “피로감”과 “경제살리기”를 내세운 정부·여당의 구호에 가려 없었던 일처럼 치부됐다. 지난 6개월이 유족들에게 깊은 여한을 남긴 이유들이다.
그러는 사이 세월호 유가족들은 스스로 고군분투하며 진실규명에 나서고 있다. 유가족들은 최근 검찰과 해경마저 외면해왔던 세월호의 사고 당일 항적도와 사고 시각 등을 온전히 복원했다. 사고 관련 기록의 증거보전신청을 법원에 내고 해경과 해양수산부, 민간업체를 오가며 만들어낸 결과다. 가족대책위와 시민단체, 일부 야당 의원들의 꾸준한 진상조사를 통해 지금껏 간과됐던 새로운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민간 구조업체를 기다리며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쳤던 해경은 애초 해군 구조인력을 투입할 계획까지 세워놓고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이 민간과 유착됐기 때문인지, 아니면 해경과 해군이 민간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능했던 것인지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던 해상통신망의 문제점 역시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채 그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족들과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사고 당일 청와대의 대처 상황’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온전한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일은 끝난 게 아니라,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 않은 셈이다.
- 한겨레신문 하어영기자, 김규남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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