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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사성어 ‘기기기닉(己飢己溺)’의 가르침

irene777 2014. 11. 17. 21:47



고사성어 ‘기기기닉(己飢己溺)’의 가르침


진실의길  정운현 칼럼


2014년 11월 17일 -




“우(禹)임금은 자신이 사명을 다하지 못해 백성들이 물난리로 고초를 겪고 있다고 생각했고, 주나라 시조 후직(后稷)은 자기가 일을 잘하지 못해서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 이처럼 그들은 백성들의 곤경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에 스스로 그렇게 조급해 했다.”


성현 맹자(孟子)는 <맹자> ‘이루장구(離婁章句)’ 하편에서 우임금과 후직을 이렇게 칭송했다. 천하의 성군으로 불리는 우임금은 13년 동안 홍수와 싸워 이긴 ‘치수(治水)의 달인’이요, 후직은 상고시대부터 농사(農師)로 유명한 인물이다. 모두 칭송받아 마땅한 위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허물을 매사 자신에게서 찾으려 했다.


‘기기기닉(己飢己溺)’이란 ‘내가 굶주리고 내가 물에 빠진 듯’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낀다는 뜻이다. 지고지순한 자기희생, 처절한 이웃사랑의 정신이 없이는 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범인(凡人)은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위정자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맹자는 설파한다.





위정자들은 매사의 문제점을 자신에게서 찾고 또 자신의 탓으로 돌릴 줄 알아야 한다. 우임금과 후직은 백성들이 겪는 물난리와 굶주림이 자신들 때문이 아님에도 그들은 백성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여겼다. 이는 비단 동양식 사고방식의 문제만이 아니다. 위정자의 투철한 사명감을 강조한 말이다.


금년 봄,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참사로 295명이 목숨을 잃었고, 9명은 아직도 실종상태다. 온 나라가 국상(國喪)을 치른 형국이다. 유가족은 물론이요, 많은 국민들이 마치 자기 가족을 잃은 양 고통을 함께 했다. 진도 팽목항에서, 청운동에서, 광화문광장에서 함께 아파하며 괴로움을 나눴다.


그러나 이 나라 최고 통치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달랐다. 사고 직후 진도로 내려가서는 사고원인을 끝까지 밝혀내겠다, 가족들의 뜻대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청와대 인근 청운동에서 대통령을 만나려고 몇날 며칠을 기다렸지만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참 매정하고 야멸찬 사람 같다. 그래서는 안된다. 일반 국민도 아닌 위정자라면 더욱 그래선 안된다. 전제 군주시대의 군신관계를 말하자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라고 해도 최고 권력자라면 국민이 겪는 아픔을 제 아픔인양 여기고 국민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은 매 한가지다.


엊그제 대법원은 5년 전 쌍용차 대량해고에 대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2심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으면서 말이다. 쌍용차 사태 후 무려 25명의 해고자와 가족이 이런저런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2심 재판 과정에서 사측의 해고가 ‘불법’임이 상식선에서 드러났건만 대법원은 괴상한 논리를 내세워 이를 깔아뭉갰다.


대법원은 사법부의 최고 권력기관이다. 그들이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겪은 고통과 그로 인한 피눈물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일순간이라도 자신들이 해고자 당사자라고 생각해 봤다면 그런 판결을 내릴 순 없을 것이다. 물론 재판을 인정(人情)으로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에겐 눈꼽만큼의 인정도 없었던 것 같다.


우임금이나 후직이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빠뜨린 것처럼,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굶긴 것처럼 생각하지는 못할망정 고통받는 백성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남 앞에 설 자격이 없다. 갈수록 사회가 각박하고 몰인정해지는 것은 이른바 ‘지도층’이라는 자들이 제 몫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