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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의 향원익청 (香遠益淸) - 광장의 의병들

irene777 2014. 11. 20. 05:59



곽병찬의 향원익청 (香遠益淸)


광장의 의병들


- 한겨레신문 2014년 11월 18일 -





▲ 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



작가들의 자책은 극심했다. 유리창의 균열도 내지 못하는 문학이란 무엇이고, 그림이란 무엇이며, 노래란 무엇이고, 만화란 무엇이고, 시란 무엇인가. 수백명의 아이들이 물속으로 페이드아웃 되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 아닌가!


그들이 15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밑에 다시 집결했다. 시와 산문으로, 영화 ‘이 선을 넘어가시오’로, 1천개 타일 그림 그리기 ‘세월호 기억의 벽’으로 애도하고 추모하고, 고발하고, 꿈을 추슬렀다. 그들은 12척의 배로 왜적을 격퇴했던 장군과 의병들이었다.


“애니메이션 만화가가 꿈이었다는 소정이에게, 시각디자이너가 꿈이었다는 주아에게, 배우가 꿈이었다는 동협이에게, 춤을 좋아했다는 경주에게, 제빵사가 꿈이었다는 다빈이에게, 동물학자가 꿈이었다는 재강이에게, 국제구호활동가가 꿈이었다는 수연이에게, 바리스타가 꿈이었다는 준민이에게, 수화통역사가 꿈이었다는 서우에게, 박물관큐레이터가 꿈이었다는 지아에게…”(송경동 시인)


10월28일 문화예술인행동은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연장전’ 선언을 했다. 각자가 제 연장을 들고, 잠수사들도 빠져나온 저 참사의 심연 속으로 뛰어들어가겠다고 했다. 무너진 정의와 으깨진 꿈의 잔해로 덮여 있는 그곳에서, 묻혀버린 꿈을 되살리겠다고 했다. 일거에 밀어버리려는 권력의 불도저 앞에 버티고 서서, 아이들 꿈의 조각들을 하나씩 추슬러 맞추겠다고 했다.


정신분석학자 김서영 교수는 4월16일 그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청소년판 해설서를 집필하다가 원고를 집어던졌다. “멈춘 시간 속에서 미래가 사라질 때, 배 유리창 한 장도 깨부수지 못하는 이 쓸데없는 말들은 도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었나. 나는 여태껏 무슨 말들을 지껄여온 것인가.”(‘저항의 일상화를 위하여’에서)


작가들의 자책은 극심했다. 유리창의 균열도 내지 못하는 문학이란 무엇이고, 그림이란 무엇이며, 노래란 무엇이고, 만화란 무엇이고, 시란 무엇인가. 가난해도 자부했었다. 작가란 심해 잠수사와도 같은 것. 삶의 어두운 심연에서 고통과 슬픔 그리고 꿈과 희망을 건져 올리는 존재. 그런데 그들은 극장 안락의자에서 아우슈비츠의 학살을 관람하듯이, 수백명의 아이들이 물속으로 페이드아웃 되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 아닌가!


고은 시인 등 69명의 시인들은 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로 통렬하게 자책했다. “이 찬란한 아이들 생때같은 새끼들을/ 앞세우고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몹쓸 살 판입니까”(고은 시인 ‘이름 짓지 못한 시’) “가만히 기다린 봄이 얼어붙은 시신으로 올라오고 있다/ 욕되고 부끄럽다, 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김선우 ‘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의 주인공은 통치자의 금지 명령을 거역하고, 폴리네이케스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 시절 지배자들은 애도를 금지했다. ‘반역에 대한 애도도 반역이다!’ 지금 이곳의 권력자들처럼. 그러나 안티고네는 시신 위에 흙을 뿌리고 제주를 올려 추모한 뒤 감옥으로 간다. ‘그건 신의 명이었다.’ 그러고는 지배자의 더러운 칼이 닿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거둔다.


조경인들은 시민들과 함께 서울광장 한 귀퉁이에 단순하지만, 가장 슬픈 상청을 꾸몄다. 노란 리본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흐느꼈다. ‘슬픈 너희들 어린 왕자처럼 다시 돌아오라’, 만화가들은 추모의 만화를 들고 전국을 순회했다. 동화, 동시 작가들과 그림책 작가들이 함께 제작한 ‘세월호 한 뼘의 이야기’는 지금도 광장에서 아기 새를 잃은 어미 새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백건우 등은 추모곡을 헌정했다. 가수 김장훈과 이승철 등은 그들의 노래로,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아이들을 위로하고 또 위로했다.


제의는 비나리를 거쳐 소지로 끝난다. 비나리와 소지는 하늘에 띄우는 통한. 소설가 김연수는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인용해 이렇게 고발한다. 테바이(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 이렇게 묻는다. ‘누가 선왕 라이오스를 죽였는가. 그를 추방하기 전에는 나라가 역병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말할 수 없다고 버티는 예언자에게 왕은 이렇게 경고한다. ‘너 또한 죽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자 답한다. “그대가 찾는 범인은 바로 그대요.”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던 대통령은 ‘유병언’ 이름 석 자 앞에 잠시 몸을 떨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자가 범인이다!’ 그를 잡기 위해 심지어 군대까지 동원했지만, 어느 날 구더기 들끓는 주검 하나 던져놓고는, ‘참사의 죄인은 이렇게 죄를 받았다. 이제 생업으로 돌아가야 하리’.


이렇게도 말했다. ‘나라 경제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때 대한민국을 난파시키고, 이제는 세월호를 침몰시키고 저 아이들을 수장시킨 탐욕의 항해사들은 그렇게 국민을 협박하곤 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중단된 탐욕의 항해를 재개하는 것. 골든타임에 빈둥대던 그들이 가소롭게도 골든타임을 운위하는 까닭이다.


“당신들은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 침몰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앞에서도, 야 거짓말하지 말라고 ○○○아, 소릴 들어가면서도,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 다 바꾸겠다고,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구조에 최선을 다한다고, 구조대원 726명과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가 투입된 수색전을 펼친다고 거짓말을 했다.”(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이런 절규도 있었다. “이것이 국가인가, 이것이 인간인가, 이것이 인간의 말인가.”(김행숙 ‘질문들’) “옥좌엔 절망이 버티고, 궐엔 겹겹이 썩은 욕망들이 우글댄다는 풍문이 그저 풍문이라면 그날, 아아 4월16일 그 아침에, 국가는 어찌해 그 바다로 나아가지 않았던 겁니까.”(이광표 ‘선언’) 팝아티스트 이하와 동료 작가들은 결국 이 ‘미친 정부’를 수배하는 전단을 뿌렸다.


작가들이 바라는 건 처벌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아이들의 원망과 꿈을 건져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꿈은 진실의 계단을 통해서야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서로 빛을 비추며 죽은 아이들을 찾아야 합니다.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들을 찾아 어둠 속으로 파고들어가야 합니다.”(김행숙) 신화 속의 판도라가 에피메테우스의 항아리에서 겨우 살려낸 것이 희망이었던 것처럼, 절망의 세월호에서 아이들의 꿈이라도 건져 올리려는 것이었다.


송경동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연장’은 어떤 역사의 밭을, 진실의 논을 일구는 데 쓰여야 할 것인가?/ 나의 ‘연장’은 어떤 허위의 장막을, 권력의 벽을, 독점의 금고를 깨부수는 데 쓰여야 할 것인가?/ …그 무수한 짓밟힌 꿈들에게 나의 ‘연장’은 어떤 이웃이어야 할까.”


가수 김장훈은 일찍이 보미의 꿈을 되살리려 별이 된 보미와 함께 ‘거위의 꿈’을 부르고 또 불렀다. 싱어송라이터 신용재는 서툰 악보로만 남은 이다운의 자작곡 ‘사랑하는 그대여’를 다듬어 그 꿈을 세상에 알렸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박예슬,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려던 빈하용의 꿈은 장영승 서촌갤러리 대표를 통해 세상을 울렸다. 김시연의 꿈은 뮤직드라마 ‘야, 이 돼지야’로 되살아났다. 사제가 되고 싶었던 박성호의 꿈은 합동분향소 앞 ‘성호의 성당’으로 세워졌다.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아름다운 성당을 지은 ‘세월호가족지원네트워크’의 작가와 시민들은 희생자 304명의 꿈을 기억하는 마을, 세월호 꿈마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들의 영상기록물을 제작하고, 아이들의 기록물로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그들이 15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밑에 다시 집결했다. 글쟁이, 춤꾼, 가객, 사진가, 영화인, 만화가, 연기자 그리고 시민은 제각각 저의 연장을 들고 봉기에 나섰다. 시와 산문으로, 영화 ‘이 선을 넘어가시오’로, 1천개 타일 그림 그리기 ‘세월호 기억의 벽’으로, 고교 2년생들의 책상과 걸상 304개로 쌓아올린 세월호 진상규명 기원탑으로 애도하고 추모하고, 고발하고, 꿈을 추슬렀다. 그들은 12척의 배로 왜적을 격퇴했던 장군과 의병들이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욕망. 그러나 결국 그 장막을 찢고 결국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건 사람의 꿈. 권력은 그런 사이렌의 유혹을 거부하는 그 꿈이 싫다. 그래서 정의와 평화의 꿈을 말하던 예수도 죽이고, 전봉준도 죽이고, 게바라도 죽이고, 킹 목사도 죽였다. 그러나 어찌 하늘의 별을 없앨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꿈을 지울 수 있을까, 시민의 횃불을 모두 밀어버릴 수 있을까.



-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